
◇사는 곳에서 공공 서비스
24일 중국 국무원은 근로자가 자신이 일하는 지역에서 교육과 의료, 공공 임대주택, 연금 등 사회보험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1958년 1월 제정된 ‘후커우 등기 조례’에 따라 본인 후커우가 등록된 지역에서만 관련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도입한 후커우 제도는 같은 성(省) 안에서도 ‘도시 후커우’와 ‘농촌 후커우’가 나뉜다. 대학 진학과 대기업 및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후커우를 바꿀 수 없다. 고향을 떠나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일하는 농민공 3억 명 이상이 의료보험과 자녀의 학교 진학 등 기초적인 사회보장제도마저 이용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는 부모가 대도시로 돈 벌러 떠나고 어린 자녀만 고향 집을 지키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해왔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후커우 제도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번 조치는 실제로 일하는 도시에서 농민공이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도시 주택 구매 자격, 지역별 대학 입학 정원 등에서는 기존과 같이 후커우 영향을 받는다.
◇‘농민공 공급’ 확대가 목표
중국이 대대적인 후커우 제도 완화에 나선 첫 번째 이유는 농촌에서 유입되는 노동력 감소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수십 년간 농민공 노동력에 의존해 공장부터 배달·서비스까지 경제를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노동 유입이 줄고 있다.지난해 중국 농민공은 3억115만 명으로 전년보다 142만 명,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다른 성으로 이동한 농민공은 6765만 명으로 전년보다 75만 명(1.1%) 감소했다. 내륙에 거주하는 농민공이 대도시와 연해 제조업 벨트로 밀려드는 시대가 끝나고, 오히려 고향 인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동부 해안 지역에서 사업체를 경영하는 한 중국인 대표는 “춘절 등 큰 명절 때 귀향한 농민공이 돌아오지 않는 사례가 10여 년 전부터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공 평균 연령도 상향되고 있다. 지난해 43.3세로 전년보다 0.1세 높아졌다. 50세 이상 농민공 비중은 32%로 2021년 27.3%에서 계속 상승세다. 농민공이 고령화될수록 이동성이 약해져 노동 공급 효율성은 떨어진다. 농민공의 도시 유입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당근을 제시할 필요가 생겼다.
◇내수 부양까지 겨냥
내수 부진도 후커우 개혁의 강력한 동인이다. 농민공은 도시에서 월급을 받지만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하고 저축에 전념해왔다. 지난해 농민공 월평균 소득은 5075위안(약 113만원)으로 전년보다 2.3% 늘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농민공은 사회보장 수준이 낮아 소비를 적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조치로 소비 여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농민공 자녀가 도시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부여한 점도 농민공 소비 수준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후커우 개혁에는 농민공 자녀가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도시에서 공립학교에 다니고, 조건을 충족하면 거주지에서 대학 입학시험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사실상 가족 단위 정착을 허용한 것으로, 농민공 홀로 도시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소비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후커우(戶口·호적) 제도
중국에서 개인을 출생지, 가족관계, 거주지 기준으로 등록하고 관리하는 주민등록 제도. 크게 농촌 호적과 도시 호적으로 나뉘며, 이 지역을 벗어나면 복지 및 의료 지원부터 취학까지 공공 서비스에서 제외된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