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코피작전’ 검토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핵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이른바 ‘코피작전’(bloody nose strike)으로 불리는 제한적 공격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트럼프 1기 시절 북한 핵 프로그램 폐기를 위해 검토된 소규모 선제공격과 비슷한 방식이다.소식통은 WSJ에 “이 작전은 이란의 일부 군사 및 정부 시설을 겨냥할 것이며, 대통령이 승인하면 며칠 내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한적 공습 뒤에도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공격으로 작전이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은 광범위한 전면전을 통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정권 전복에 나설 수 있다고 WSJ는 짚었다. 한 소식통은 WSJ에 미군은 이란 정권이 핵 시설을 해체하거나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공격 수위를 높여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이란 정권 전복을 목표로 삼는 전면전까지 1주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군의 중동 내 전력 증강은 수주간 공습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며 “2003년 이라크 침공 직전 미군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고 짚었다. 항로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지난 사흘간 공중급유기 39대가 교전 가능 지역으로 재배치됐다. 항공모함 1척과 구축함 8척, 연안전투함 3척 등 함정 12척이 중동에 배치된 상태다. 항모 제럴드포드함과 구축함 3척도 해당 지역으로 이동 중이다.
다만 일부 참모진은 이 같은 공격은 이란의 보복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10~15일의 핵 포기 시한을 제시했다. ◇ “이란, 협상 대신 전쟁에 승부수”
일각에서는 이란 지도부가 미국과의 협상 대신 전쟁에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권 유지를 위해 오히려 대화보다 전쟁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란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FT에 기고한 글에서 “그들(이란)은 협상을 해결책이 아니라 함정으로 여기며, 부실한 협상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는 게 더 낫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이란의 오랜 불신 때문에 대화가 아니라 무력 충돌을 준비 중”이라고 주장했다.나르스 교수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정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하고 있다. 전쟁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 반미 감정을 부추겨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대중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는 설명이다. 그는 “궁지에 몰린 정권은 위험을 감수하려고 한다”며 “장기전을 통해 미국이 추가 공격을 포기하게 하고, 미국과의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란이 외교적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양국이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두고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농축 능력을 영구적으로 해제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지만,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영구 해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보유 제한, 중동 대리 세력 지원 중단 문제도 논의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란은 핵 프로그램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유가 6개월 만에 최고
이날 지정학적 불안이 확산되며 유가는 상승했다. ICE선물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 대비 1.9% 상승한 배럴당 71.66달러에 마감했다.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도 1.9% 올라 배럴당 66.43달러를 기록했다. 종가 기준 지난해 8월 이후 최고치다. WTI는 올해 들어 16% 뛰었다.시장은 양국 간 군사 충돌이 발생하면 이란이 중동 원유 수출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약 3분의 1이 이 해협을 지난다. 헬리마 크로프트 RBC캐피털 애널리스트는 “핵심 쟁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은 또 다른 군사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미국의 대규모 군사력 증강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 훈련은 두 번째 군사 충돌을 위한 준비 태세가 시작됐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