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퍼펙트 스톰이다.”(마르쿠스 뒤스만 아우디 최고경영자)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반도체 공급난으로 구조적 대격변기를 맞고 있다. 생산 차질에 따른 재고 부족으로 인기 차종의 출고가 1년까지 지연되면서 완성차업체들이 대혼란에 빠졌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애초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2분기에 정점을 찍은 뒤 3분기부터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다시 악화하기 시작했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이 밀집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현지 조립라인 대부분이 폐쇄된 탓이다.
가장 심각한 부품은 엔진컨트롤유닛(ECU)이다. ECU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 소자는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등인데, 생산기지가 말레이시아에 몰려 있다.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온, 일본 르네사스, 스위스 ST마이크로 등을 포함해 동남아 반도체 공장 98개 중 25개가 한 곳에 집중돼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도 반도체 부족으로 또다시 평일 공장 가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주말 특근은 전면 취소했다. 생산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9월 국내에서만 각각 1만 대, 2만 대 규모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자동차 수요는 견조한 까닭에 출고 대기는 급격히 길어졌다. 이달 계약 기준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등의 주요 차종별 출고 대기 기간이 최소 4개월에 달한다.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이달 계약해도 11개월 뒤인 내년 9월 이후에나 받을 수 있다. 현대차 투싼 하이브리드도 9개월 이상 밀려 있다.
현대차·기아는 해외에선 선방하고 있다. 3분기 미국 시장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했다.
이는 내수 차량과 해외 모델의 스펙 차이 때문이다. 같은 차종이라도 국내용과 미국용은 엔진이 달라 필요한 ECU에 차이가 난다. 미국용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자체가 제한적이기도 하다. 국내용 대비 10~20개가량 옵션이 적다.
반도체는 자동차업체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도요타는 올 3분기에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미국 시장에서 차를 가장 많이 판 회사가 됐다. 현대차와 도요타의 사례를 보면 세계 자동차산업을 짓누르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여파가 기업별,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도체 공급 부족은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동차 제조사 경영진은 그동안 반도체 부족 현상이 연말이면 완화될 일시적인 문제라고 말해왔지만, 이젠 수년이 걸릴 ‘구조적 대격변’이라는 견해가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김일규/김형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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