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면 주택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목가치와 물가를 반영한 실질가치를 선별하는 능력이 부족한 가계일수록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한국의 화폐환상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2018년 6월 25일~7월 13일 20~59세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은 ±4.4%포인트)를 진행해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화폐환상은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것으로 가계·기업이 물가를 반영한 실질가치가 아닌 명목가치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판단하는 현상을 말한다. 물가와 명목임금이 2% 상승하면 실질임금은 같지만, 근로자들은 임금이 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당신 자산은 예금과 주택에 각각 절반이 묻어뒀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면 자산을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응답자 43.4%는 '주택투자'를 늘리겠다고 했다. '바꾸지 않겠다'와 '예금을 늘리겠다'는 답변은 각각 18%, 38.6%로 집계됐다.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면 실질금리(명목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제외한 금리)가 낮아지는 만큼 위험회피 차원에서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 자산을 늘리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자산을 투자하는 과정에서는 가계가 물가를 예민하게 점검하는 등 화폐환상의 조짐이 포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계가 월급을 비롯한 임금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화폐환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임금교섭과 이직 과정에서 가계는 명목임금과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을 비슷한 비중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 3000만원인 A씨의 임금인상률은 2%인 동시에 물가상승률은 0%다. 연봉 3000만원인 B씨는 임금인상률이 5%인 동시에 물가상승률은 4%다. A씨(실질 임금 인상률 2%)와 B씨(실질 임금인상률 1%) 가운데 누가 경제적인 면에서 나은가요."라는 질문에 A씨와 B씨를 고른 응답자는 각각 55.6%, 44.4%로 오차범위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권오익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화폐환상이 클수록 지방 거주자의 경우 가계의 순자산 규모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화폐환상이 가계의 자산축적에 일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8년 설문인 만큼 집값과 물가 수준이 바뀐 현재 조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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