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성과는 시원찮았던 산업 연구개발(R&D) 지원 방식을 전면 손질하기로 했다. 우수 연구기관은 정부 연구비를 인건비·장비 구입 등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R&D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사진)은 8일 산·학·연 전문가 온라인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산업 R&D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R&D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기업의 경영 악화를 고려해 R&D 수행기관의 현금부담금을 최대 25% 수준으로 감면하며 △지원 대상 선정 및 사후 평가 시 사업화 실적을 적극 반영하는 것이다.
그간 정부 R&D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은 기존에 승인받은 항목에 딱 맞춰 연구비를 지출해야 했다. 예컨대 장비 구입비는 남아돌고 재료비는 모자란데도 예산 전용이 불가능해 재료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억지로 장부를 끼워맞춰 재료 구입비를 마련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R&D 샌드박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기관의 연구비 사용 및 연구 내용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는 제도다. 기업이 샌드박스 적용을 신청하면 산·학·연 전문가 10인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과거 실적 등을 토대로 심사해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선정된 기업은 연구목표와 참여기관을 자체 변경할 수 있고, 연구목적을 위해 사업비를 자유롭게 전용할 수 있다.
산업부는 또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의 R&D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민간부담률도 4분의 1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예컨대 대기업이 산업부 R&D 과제를 수행하려면 사업비의 67% 이상을 부담하고, 이 중 60%를 현금으로 내야 했다. 방안이 시행되면 대기업 부담은 사업비의 50%로 줄어들고, 현금 납부 비중은 15%로 내려간다.
산업부는 연구비 유용 등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사후 평가를 사업화 등 경제성 평가 위주로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기존 ‘성공’과 ‘실패’로 나눴던 R&D 평가기준을 없애고 기술개발이 끝난 3년 뒤 ‘사업화 성공’ 여부만 평가하기로 했다. R&D 샌드박스를 적용받은 기관은 더 깐깐한 평가를 받게 된다.
R&D 수주 기관을 결정하는 평가기준도 사업화 실적 위주로 개편한다. 바뀐 기준은 일부 순수과학 진흥 목적의 비영리 분야를 제외한 전 분야에 적용된다.
산업부는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이 개발될 수 있도록 대규모·통합형 R&D도 도입해 신규 과제의 20% 이상을 할당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관련 규정 정비를 마무리한 뒤 내년부터 방안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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