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바로 주식을 팔 수 있는 해외 기관에 물량을 너무 많이 배정했다.”
“특정 해외 사모펀드(PEF)에 물량을 몰아줬다는 소문이 돈다.”
무려 31조원의 일반청약 증거금을 모은 SK바이오팜의 공모주 배정을 둘러싸고 금융투자업계가 시끄럽습니다. 공동대표주관 증권사인 NH투자증권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이 ‘해외 기관에 수익 기회를 불공정하게 많이 몰아준 게 아니냐’는 의혹에서입니다.
각종 의혹은 국내 금융회사의 공모주 배정 물량이 기대에 못 미친 데 따른 불만에서 출발했습니다. 장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내걸며 적극적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손에 들어온 주식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SK바이오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기관의 수요예측 참여물량 가운데 79억6644만주, 전체의 무려 81.15%가 보름 이상 보유를 약속했는데요. 최종적으로 이들 의무보유 확약 기관이 배정받은 주식수는 전체 기관 물량의 52.25%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47.75%는 상장 직후 주식을 팔 수 있는 미확약 기관에 돌아갔습니다. 이중 대부분은 해외 금융회사로 추정됩니다.
기관의 한 해 공모주 농사를 좌우하는 5000억원어치 이상 주식 공모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에 적은데요. 그런 희소한 투자 기회를 외국 회사에, 그것도 ‘언제든 팔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제공했다는 사실을 달가워 할 기관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기관의 불만이 공정성 의혹으로 확산할 만큼 외국인 배정 절차를 둘러싼 시장의 신뢰가 두텁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 모범기준에 따르면 대표주관사는 ‘자율적으로’ 공모주 배정물량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단 참여자의 질적인 측면(운용규모, 투자성향, 공모 참여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식을 배정받은 외국 기관이 실제 질적으로 우수한 곳인지 외부에선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업공개(IPO) 시장에선 오래 전부터 단기투자 목적의 외국인이 주식을 가져가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란 의심을 품어왔습니다. 영문 투자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소규모 공모에까지 많게는 수백 곳씩 참여하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증거금 납입 의무가 없는 규제 차익을 노린 ‘검은 머리 외국인’ 또는 정체를 알기 힘든 회사도 많을 것이란 추측도 난무합니다. 이번 SK바이오팜 수요예측에도 117곳의 외국 기관이 참여했는데요. 기관 배정분의 약 20배에 해당하는 총 2억4871만주를 청약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 기관의 난립과 예상보다 많은 물량 배정은 IPO 시장을 ‘외국인의 단기투자 놀이터’라 자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앞으로도 끊임없이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융당국이 2017년부터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외국인 기관투자가의 정보 공시를 강화했지만, 신뢰 개선을 위한 추가 조치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