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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글쓰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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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래전 일이다. 2007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13년 전. 나는 62세의 나이로 초등학교 교직에서 정년퇴임했다. 정상적으로 편안하게 퇴임한 것이 아니라 정년퇴임 6개월 전에 뱃속의 쓸개가 터지는 바람에 아슬아슬한 병원 생활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문제는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집에서 정양하고 있을 때였다. 65㎏쯤 되던 체중이 45㎏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몸이 휘뚱휘뚱했고 정신마저 혼미했다. 6개월간 병원 생활을 통해 얻은 모든 부정적인 정서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도 마찬가지. 오직 사람 하나 살리자고 6개월간 쪽침상의 잠자리와 얼음밥(냉장고에 넣어 얼렸다가 끼니때마다 꺼내 녹여 먹는 밥)을 마다하지 않고 견딘 아내다. 모르면 몰라도 환자인 나보다 더 심한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슨 일에든 몰두하고 싶었다. 그래서 퇴원 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선 자전거 한 대를 구입해 낮이면 그걸 타고 공주 시내를 쏘다녔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많이 걱정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는 글을 썼다. 시도 썼지만 병원 생활 가운데 있었던 일들을 썼다.

밤늦도록 글을 쓸 때면 아내가 와서 핀잔을 했다. 몸도 아픈 사람이 왜 잠은 안 자고 글을 쓰고 그러느냐고. 하지만 나는 끝까지 자신을 다그쳐 책 한 권의 집필을 마쳤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병원 생활에서 시작해 나를 감싸고 있던 모든 어두운 정서가 깡그리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평생을 두고 처음 맛보는 묘한 심경의 변화였다. 마음속 상처, 두려움, 우울함, 절망감, 그 모든 찌꺼기들을 글쓰기가 가져갔다. 병원 의사들이 육신의 병을 치료해주었다면 글쓰기는 마음의 병을 치유해준 셈이다. 글쓰기가 그렇게 힘이 세고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병원에서 얻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아내에게 나는 완성된 책의 원고 읽기를 권했다. 처음엔 불편해하던 아내도 조금씩 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글 읽기 역시 정서적 치유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 그러니까 문인들만의 고유 능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기 능력껏 글을 쓸 수 있고 그 글쓰기는 그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무엇보다도 정서적 치유 기능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글쓰기가 존재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나는 권하고 싶다. 마음속으로 힘든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마음을 모아 글을 써보시라. 속는 셈 치고 한번 써보시라. 비판적이고 사실적인 글보다는 고백적인 글이 더욱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글쓰기의 힘은 세다. 그 센 힘이 당신을 도와주고 당신을 건져줄 것이다. 나는 글쓰기의 힘을 굳게 믿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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