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열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창(검찰)’의 논리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혐의를 부인하는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총수가 도주하겠느냐”며 불구속 수사가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 구속을 둘러싸고 검찰과 변호인이 한판 승부를 펼칠 예정인 만큼 결과에 따라 검찰의 ‘삼성 수사’ 전반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재계 “이재용 구속해야 할 이유 없어”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는 △주거 불명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 등 세 가지다. 다만 법원은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등을 함께 고려해 피의자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은 구속 사유 세 가지 중 그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이 부회장 자택 앞에서 ‘삼겹살 파티’를 열었을 정도로, 이 부회장의 주거지는 일반에 알려져 있고 일정하다는 게 삼성 측 논리다. 또한 이 부회장이 기업을 팽개치고 도망할 리 만무하기 때문에 ‘도주 우려’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1년8개월 동안 압수수색만 50여 차례, 소환조사는 430여 회 했다”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면서 수사 막바지인 지금에 와서야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따라 이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를 구속하는 사례는 매년 줄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이 발부한 사전구속영장 건수는 2만4044건으로, 2015년(3만1158건)에 비해 23% 감소했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의 구속영장이 지난해 두 차례나 기각됐는데도 검찰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 부회장 망신주기’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재계 시각이기도 하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보통 하급자부터 단계를 밟아 윗사람을 구속해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이 하급자(김태한 대표)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윗선을 구속하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다”고 전했다.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 강조할 듯하지만 법원은 지금껏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사안의 중대성’을 함께 고려해왔다. 이 부회장의 구속심사를 담당할 원정숙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지난 3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조장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엄중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번에도 원 부장판사는 주거불명, 도주·증거인멸 우려 등 구속 사유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사안의 중대성 등을 폭넓게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20만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범죄 혐의의 중대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앞서 두 차례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한 점을 들며,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면 이 부회장은 2년4개월 만에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법원이 이 부회장의 혐의를 일부 인정한 셈이므로 향후 재판 과정에서도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법원이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검찰은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이 부회장이 “수사 적정성에 대해 검찰 외부 전문가의 판단을 받게 해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지 이틀 만에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로 응수한 것을 두고 비판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더라도 “범죄 혐의는 어느 정도 소명되지만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들면 검찰과 변호인 측이 무승부 판정을 받은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구속이란 최악의 수를 피하지만 검찰도 이 부회장이 범죄 혐의가 있다는 점을 인정받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인혁/송형석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