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실상 양적완화 첫 걸음을 뗐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미국 중앙은행(Fed)이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서는 등 주요국이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펴자 한은도 시장 안정을 위해 적극 나선 것이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사진)는 2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기로 결정한 조치는 사실상의 양적완화 조치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윤 부총재는 "다만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정책금리를 제로(0)로 낮춘 다음에 더 이상의 정책 수단 여력이 없어 돈을 공급하는 방식"이라며 "이날 한은이 결정한 조치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일정 금리수준에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는 주단위 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매입 제도를 도입했다. 내달부터 3개월간 운영되며,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달부터 RP매매 대상 기관과 증권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은이 전액 공급 방식의 유동성 지원에 나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과거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실시된 적이 없다.
윤 부총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불안한 금융시장 상황에 대해 우려하며 "지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엄중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금융위기를 넘어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충격보다 지금 시장 상황이 더 불안한지는 좀 더 지나봐야 안다"면서도 "현재 한은은 최상의 경계감으로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윤 부총재는 지금의 시장 상황에선 RP매입 대상채권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국고채를 매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겠지만 현재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시장은 국고채가 아닌 다른 채권시장"이라며 "은행채를 넘어 공공기관 발행채를 확대한다면 원활하지 않은 시장의 불안감이 해소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시장 상황이 추가로 악화된다면 추가 대응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정부가 보증만 한다면 회사채 매입도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장에선 한은이 Fed처럼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한은은 "회사채, CP를 직접 매입하는 것은 민간이 발행한 채권의 매입을 금지한 한국은행법(제79조) 규정으로 인해 정부보증이 없는 경우 이를 시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 부총재는 "회사채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려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지는 별개 문제"라고 했다.
추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선 "현재 금융경제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만큼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주시면 되겠다"고 했다.
한은은 지난 16일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75%로 전격 인하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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