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思春期). 한자 의미 그대로 해석하면 ‘봄을 생각하는 시기’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변덕이 심한 봄 날씨만큼 충동적이고 감정 조절도 잘 안 된다. 그런 아이들을 상대로 부모들은 무조건 다그친다. 하지만 뇌 과학자들은 불균형한 뇌의 발달 속도를 고려한다면 이 또래 아이들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 욕구, 충동 등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아직 덜 발달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어려움을 딛고 성장을 이룩한 부모세대와 성장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젊은 세대 간 이해의 부재(不在)는 세대 간 감정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같은 세대라면 다를까? 동일 세대 내에서도 사소한 마찰이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안에 대해 논쟁하던 중 상대방이 갑자기 반말을 한다. 이쯤 되면 이제까지의 이성적 논의는 사라진다. 왜 함부로 반말을 하냐, 나이가 몇이냐 등이 시비의 대상이 된다.
초연결사회라고 불리는 사회현상 역시 연결이 아니라 분열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연결사회에서 서로 간의 이해를 돕는 의사소통이 증가하기보다는 역설적으로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정보만을 같은 편을 통해 확인하고 강화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분노사회’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우리 사회 전반에 분노와 갈등이 만연해 있다.
용서의 ‘서(恕)’의 한자 의미를 살펴보면 상대방과 마음이 같아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분노의 ‘노(怒)’는 감정으로 인해 마음이 노예화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상대방이 감정적이어서 ‘화(火)’가 날 때 맞대응하다 보면 돌아올 다리를 불태우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불구덩이에 기름을 갖고 뛰어드는 셈이 된다.
화재가 났을 때는 불이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었다’는 말은 있지만 ‘이성의 골이 패었다’는 말은 없다. 분노를 진정함으로써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노예화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냉각기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이후 ‘상대방이 왜 그랬을까? 내가 상대방이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통하면 감정의 골을 메울 수 있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나눠 먹을 내일의 파이가 오늘의 파이보다 더 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성장과 구조적 변화로 불확실성이 증대된 사회에서는 내일에 대한 약속보다는 오늘 당장의 보상을 원한다. 따라서 기업과 국민이 자율과 창의성을 발휘하면 내일의 파이가 더 커지고, 나아가 커진 파이가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고, 기대하고, 선택하게 하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 감정의 골을 메우도록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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