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정부, 소재·부품·장비 '탈일본' 선언…전방위 대책 발표

입력 2019-08-05 13:45
수정 2019-08-05 14:19
예산·세제·금융·입지 지원
짧게 1년, 길게 5년 내 '독자적 공급망' 구축
양적성장 치중한 사이 한일 기술격차 벌어져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소재·부품·장비산업의 '탈(脫)일본'을 선언했다. 예산, 세제, 금융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통해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내 독자적인 공급망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5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가) 제외 조치에 따른 후속 대응으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높은 의존도 등 소재·부품·산업이 가진 구조적 취약점을 해결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한국 제조업이 새롭게 혁신해 도약하는 기회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은 일본의 수출규제 확대로 수급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 100대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소재·부품·장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일본의 전략물자 1194개와 소재·부품·장비 전체 품목 4708개를 분석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 100개 품목을 선정했다.

이 중 20개는 안보상 수급위험과 주력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전략적 중요성이 커 기술 확보가 시급한 품목이고, 80개는 밸류 체인(가치사슬) 상 취약품목이면서 자립화에 시간이 다소 걸리는 전략적 기술개발이 필요한 품목이다.

20개 품목에는 반도체와 자동차, 기계·금속 각 5개, 전기·전자 3개, 디스플레이 2개가 들어갔다. 일본이 1차 수출규제 대상으로 삼았던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도 이에 속한다. 이들 품목은 전주기적 특단의 대책을 통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공급 안정성을 이룬다.

예컨대 불산액, 불화수소, 리지스트 등 반도체와 자동차 핵심소재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대체 수입국을 신속하게 확보한다.

재고 확보와 수입국 다변화를 위해 보세 구역 등 비축공간을 제공하고 저장 기간은 현행 15일에 필요 기간까지 연장한다. 반입에서 반출까지 24시간 상시 통관지원체제를 가동하고 수입 신고 전 감면심사를 완료하는 등 수입통관 절차·소요 기간을 최소화한다.

관세 납기연장, 분할납부 등을 지원하고 대체물품을 수입할 때는 할당관세를 통해 낮은 세율을 적용해 관세 부담을 줄인다. 에칭가스, 리지스트의 국내 생산량을 늘리고자 공장을 신·증설할 경우 공정안전심사검사 등 관련 인허가는 신속하게 추진할 방침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소재, 이차전지 핵심소재 등 '20개+α'는 추가경정예산 2732억원을 활용해 조기 기술 확보를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중장기 지원이 필요한 80개 품목은 대규모 연구개발(R&D) 재원을 투자하고 빠른 기술 축적을 위해 과감하고 혁신적인 R&D 방식을 도입한다.

인수합병(M&A), 해외기술 도입, 투자유치 활성화 등 기술획득 방식을 다양화하고 조속한 생산을 위해 화학물질 관리, 노동시간 등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애로는 범부처 차원에서 신속하게 해소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7년간 약 7조8000억원의 예산을 조기 투입하고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M&A 하는 데는 인수금융 2조5000억원 이상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또 하나 역점을 둔 사안은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또는 수요기업 간 협력모델 구축이다. 국내 기업이 소재·부품·장비를 개발해도 수요기업인 대기업이 활용하지 않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다.

정부는 수요·공급기업 간, 수요기업 간 강력한 협력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자금, 입지, 세제, 규제특례 등을 아우르는 패키지 지원을 하기로 했다.

또 기업 맞춤형 실증을 지원하기 위해 화학연구원, 재료연구소, 세라믹기술원, 다이텍연구원 등 4대 소재 연구소를 소재·부품·장비 실증·양산 테스트베드(시험장)로 구축한다.

양산시험 후에는 신뢰성 하자 위험에 대비해 1000억원 규모의 신뢰성 보증제를 도입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민간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간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미래차, 반도체 등 13개 소재·부품·장비 업계에서 이뤄지는 양산 설비 투자에는 입지와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핵심품목 지방 이전, 신·증설 투자는 현금보조금을 최우대 지원하기로 했다.

또 연기금, 모태펀드, 민간 사모펀드(PEF)는 물론 개인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펀드를 조성해 대규모 자립화 프로그램에 투자하고 세제 혜택, 상장특례, 투자연계형 R&D 확대 등 제도적, 기술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소재·부품·장비 기업 중 100개사는 글로벌 전문기업(GTS·Global Top Specialty)로 지정해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R&D, 특허확보·해외출원, 신뢰성 지원, 수요기업의 양산 평가 등을 일괄 지원한다.

아울러 소재·부품전문기업특별법은 장비를 포함하는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 특별법으로 바꾸고 2021년 일몰법에서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등 법적 제도도 정비할 계획이다.

성 장관은 "정부는 이번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고자 한다"며 "특단의 대책을 통해 우리 제조업이 새롭게 혁신하고 도약하는 튼튼한 발판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