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 금고 비어가는데…금융위 대주주 심사 '먼 산'

입력 2019-05-02 10:54

케이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이미 케이뱅크는 자본 부족으로 대출영업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육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금융당국은 심사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끝 모를 암초에 두 은행의 수심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카카오뱅크에 대한 카카오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관련해 이달 중순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했다. 법제처의 결과를 토대로 대주주 심사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심산이다.

카카오는 지난달 3일 카카오뱅크의 '한도초과보유 승인 심사' 신청서를 금융위에 제출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따라 카카오뱅크에 대한 지분을 기존 18%에서 34%까지 확대해 최대주주로 올라서기 위함이다.

관건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을 금융위가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대주주 적격성 요건으로 최근 5년간 금융관련법령·공정거래법·조세범처벌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애초 업계는 김범수 의장의 지난해 공정거래법 위반(계열사 공시 누락)에 대한 1억원 벌금형 약식기소건은 대주주 대상 법인이 아니기에 대주주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주주 심사가 무난하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금융위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먼저 법제처에 판단을 맡겼다. 법제처가 김 의장의 위법 내용을 카카오의 위법과 다르다 본다면 금융위는 막힘 없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 법제처가 김 의장의 위법을 카카오의 위법으로 본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있어 김 의장을 법인이 아닌 개인으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례가 명확하지 않다"며 "법제처 의견과 추후 처벌 수위를 고려해 대주주 심사 결과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인터넷은행법은 '금융위가 해당 법령 위반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예외를 둬 진입을 허용한다'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금융위의 최종적인 판단에 따라 카카오의 대주주 적격성 통과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법령해석에 통상 1~3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카카오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역시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금융위는 케이뱅크에 대한 KT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중단' 조치를 내렸다. KT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어 은행법 시행령에 해당한다는 점을 중단 사유로 들었다.

KT는 담합 협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황창규 KT 회장이 정치권 인사 등에 고액의 자문료를 주며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위 의결을 통해 승인 심사절차를 중단하고, 조사 등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승인 처리기간(60일)에서 제외하도록 결정했다"며 "심사중단 사유가 해소되면 즉시 심사를 재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KT의 대주주 심사가 중단되면서 케이뱅크의 대규모 유상증자는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달 말 예정됐던 59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이달로 연기했지만 대주주 심사가 중단되면서 KT가 증자에 참여하는 길도 막혔다.

케이뱅크는 최근 대출상품 6개 가운데 '직장인K 신용대출', '직장인K 마이너스통장', '비상금 마이너스통장' 등 3개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회사 측은 대출 중단이 상품 개편을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은 부족한 자본을 대출 중단의 배경으로 꼽고 있다.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케이뱅크는 주주들과 협의해 우선 400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를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전환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KT도 참여가 가능하다.

은행업계 내부에서는 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위기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혁신금융과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KT와 카카오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도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전히 규제가 두 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케이뱅크가 예비사업 인가를 받은 후에 은행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인터넷은행 대주주 요건이 강화됐다. 사실상 금융위가 인터넷은행의 위기를 초래한 셈인데 지금은 두 손 놓고 위기를 방관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