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직접 개발 안하지만 유망 물질엔 과감히 투자
폐암 신약물질 수출 '대박'
[ 전예진 기자 ] 한미약품이 2015년 8조원대 기술수출에 성공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 ‘잿팟’이 터졌다. 유한양행이 5일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 자회사인 얀센바이오테크와 1조4000억원 규모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유한양행은 지난 7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던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를 2400억원에 기술이전한 데 이어 4개월 만에 또 계약을 성사시켰다. 올해 받을 계약금은 약 570억원에 달한다. 창립 92년 만에 잇달아 기술수출을 이뤄낸 유한양행의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 성사된 기술수출 규모는 지난해 유한양행이 올린 매출 1조4600억원과 맞먹는다.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사 매출 1위지만 수입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55%에 달한다. 이 때문에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한양행은 자체 신약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을 도입하거나 바이오벤처에 투자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택했다.
이번에 기술이전한 레이저티닙도 2015년 7월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에서 15억원에 사들인 물질이다. 유한양행은 물질과 특허권을 이전받고 전임상(동물임상)을 추진했다. 이듬해인 2016년 8월 글로벌 임상을 위해 오스코텍의 미국 자회사 제노스코에 670만달러(약 75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90억원을 투자한 신약 후보물질이 1조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업계는 유한양행이 5년 전부터 추진해온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2012년 한올바이오파마에 296억원을 투자해 두 배 이상 수익을 올렸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오니아, 제넥신, 파멥신 등 바이오벤처에 투자했다. 2014년 엔솔바이오사이언스에서 도입한 퇴행성 디스크 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YH14618은 지난 7월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2억1815만달러(약 2400억여원)에 기술이전했다. 임상2상에서 효과를 보이지 못해 2016년 개발이 중단됐던 임상을 다시 분석해 살려내면서 ‘반전 드라마’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실패 확률이 높고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신약 개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유한양행처럼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을 개발해 되파는 전략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한미약품이 실패했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분야에서 유한양행이 성공을 거둘지 주목하고 있다. 레이저티닙은 EGFR TK(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타이로신 인산화 효소)의 돌연변이가 발생한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치료하는 표적 항암제다. 같은 기전의 약물로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가 유일하다. 한미약품이 글로벌 혁신 신약을 목표로 올리타를 개발했지만 타그리소에 밀려 올초 개발을 중단했다. 타그리소는 올해만 30억달러(약 3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레이저티닙이 임상3상을 마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와 상업화 관문을 통과하려면 최소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