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을 앞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핵심 쟁점은 이 법이 시행되면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가 초래된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치료비가 급등해 저소득층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짚기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게 있다. ‘의료 영리화’ ‘의료 민영화’라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스며든 ‘표현 왜곡’을 바로잡는 일이다. ‘영리화’나 ‘민영화’가 아니라 ‘투자개방’으로 표현하는 게 정확할 뿐 아니라, 올바른 논의를 통한 여론수렴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의료법’은 의료기관 설립·운영 자격을 의사, 국가, 지자체, 비영리법인(공익법인, 학교법인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걸 모든 사람에게 개방해 누구든 자금 시설 인력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병원을 설립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개방형 병원’ 제도로 이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 오래다.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태국 등 후발국,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도 투자개방형 병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의료의 질(質)을 높이고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사나 비영리법인이 아닌 사람이나 법인이 병원을 세우면 치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는 억지주장이 판을 친다. ‘맹장수술비 1500만원’ 등의 괴담이 대표적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이른바 ‘진보’ 정부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는 2002년 ‘경제자유구역 특별법’을 제정해 외국인의 경제자유구역 내 병원 설립을 허용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국내 의료기관의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을 추진했다. 두 정책은 지금도 지지세력 반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있다는 병원과 의료산업의 족쇄를 풀어,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은 당장 시작하더라도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투자개방형 병원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빈곤층 의료소외 등의 문제는 의료관련법과 정부의 감독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인해 의료 양극화가 문제됐다는 얘기가 불거진 적이 있는가. 서민의 치료비 급등도 사실이 아니다. 소수 투자개방형 병원을 제외하곤 일반 병원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대론자들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 언론 등에서조차 투자개방형 병원 허용을 ‘의료 영리화’ ‘의료 민영화’로 부르면서 국민 인식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어째서 왜곡인지는 국·공립 및 대학병원 등을 제외한 전체 병원(의원 포함)의 98%가 ‘민영’이고, 이들 병원은 예나 지금이나 영리활동(환자 치료)을 하고 있다는 점이 잘 말해준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표현을 왜곡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선입감을 심어줘 여론을 호도하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공자는 “올바른 정치는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의료산업 족쇄를 풀고 모두를 위한 도약을 이뤄내기 위해서 ‘이름 바로 짓고 부르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