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논설위원
지난 6일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총성이 울렸다. 10여 일이 지난 현재 상황은 미국의 선제공격이 제대로 먹힌 모양새다. 미국은 중국 제품 2000억달러어치에 추가 관세 부과를 공언했지만, 중국은 별다른 반격을 하지 않았다. 주가와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중국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대미(對美) 무역금지 제재를 받았던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가 지난 13일 벌금과 보증금 등 14억달러를 내자 중국 누리꾼들은 “오늘이 국치일이다”며 분개하고 있다.
"중국이 밀릴 이유 없다"
반면 중국 내 경제전문가들 시각은 사뭇 다른 듯하다. “중국이 미국에 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린이푸 전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매도, 중국 내 미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 등 카드는 많다”며 “중국은 미국 공세에도 연 6%대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다오쿠이 전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은 “무역전쟁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영향은 0.3%에 불과하다”며 “양국은 너무 많이 얽혀 있어 강도 높은 싸움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판강 국민경제연구소장도 “중국의 잠재력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느긋해 한다. 왜 그럴까. 지금의 중국은 1980년대 일본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들은 이번 전쟁을 최소 10년 이상 계속될 글로벌 경제패권 다툼으로 본다. 그래서 1985년 플라자합의(달러 가치 절하에 합의한 선진국 재무장관 회담)를 전후한 일본 경제의 몰락을 ‘전차지감(前車之鑑: 앞 수레가 뒤집힌 것을 보고 교훈을 얻다)’으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세계 1, 2위 경제대국 간 무역전쟁의 결과여서다.
1980년대 일본 경제는 요즘의 중국 경제와 여러 가지로 닮았다. 당시 일본의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은 10%를 넘었다. 부동산 쏠림 현상도 심했다. 당시 일본은 GDP 대비 부동산 투자 비중이 20%를 넘었다. 중국은 이 비율이 현재 1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채도 많았다. 중국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지난해 256%로, 일본의 199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정치 문제로의 비화가 걱정
반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중국은 중진국이다. 당시 일본에 비해 성장 잠재력이 크다. 둘째,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갖고 있다. 셋째,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지 않아 끌려다닐 이유가 없다. 넷째, 무역구조가 얽혀 있어 1 대 1 싸움이 불가능하다. 2016년 중국 내에서 대미 수출이 많은 상위 25개 기업 중 21개사가 외국 기업이다. 대만이 14개, 미국이 4개, 한국이 2개다. 중국의 수출이 줄면 미국과 한국도 피해를 본다. 다섯째는 미국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 경제 비중은 1985년 34%에서 2015년 22.5%로 줄었다. 결국 이들은 중국이 내수 부양을 통해 수출과 부동산 의존도를 낮추고, 위안화의 과도한 절상을 막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무역전쟁은 본질상 정치적 요소가 더 큰 변수가 된다. 중국은 이런 측면에서 약점이 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독재 국가라는 점이다. 중국이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억누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경제 성장의 ‘속도’였다는 게 중론이다. 《문명의 충돌》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 전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 발전 속도가 떨어지면 사회적 좌절이 증가하고 정치적 참여 욕구가 커지는데, 이를 제도적으로 흡수하지 못하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에 저자세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 패배의 두려움보다는 정치 문제로의 비화를 더 걱정하고 있어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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