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민 보호' 못한 대통령경호처

입력 2017-12-17 17:10
[ 조미현 기자 ] “경호구역 내에 있는 일반 시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경호실에 부여하면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월14일 대통령경호처가 발표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입법예고 보도자료에 포함된 내용이다. 경호처는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서 테러나 화재 등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행사 참석자나 일반 시민에 대한 보호, 긴급 구호조치를 담당하는 법률상의 책임 주체가 불분명하다. 경호구역 안에서 일반 시민의 생명 및 신체 위해와 재산의 손실을 초래하는 상황 등에 대비한 대책이 요구된다”며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경호처는 보도자료에서 “대통령 행사 참석자와 경호구역 안에 있는 일반 시민에 대한 안전 보호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가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당한 사건은 경호처가 “일반 국민까지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지 5개월 만에 발생했다. 사건 발생 전에 한국 취재진은 중국 경호원과의 충돌 우려를 청와대 경호처에 전달했다. 하지만 사진기자 2명이 중국 경호원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도움을 준 청와대 경호팀은 한 사람도 없었다. 폭행을 말리던 청와대 춘추관 직원이 “우리 경호 어디갔습니까. 좀 와주세요”, “한국 경호 와주세요”라고 수차례 큰 소리로 외쳤지만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경호처 관계자는 사건 발생 후 기자들에게 “경호처가 (취재진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협조하고 현장에서 관리해야 했지만 해외에는 많은 인원이 올 수 없어 대통령 경호에 집중하고, 떨어져 있는 곳에는 인원이 많지 않다”고 해명했다.

경호처는 새 정부 출범 후 ‘열린 경호, 낮은 경호’를 지향하고 있다. 시민들과 격의 없이 스킨십을 하는 문 대통령과 발을 맞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열린 경호와 낮은 경호는 안전이 전제될 때 의미가 있다.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강조하며 스스로 시민 보호 의무를 지겠다고 한 것은 경호처다. 문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가 중국 경호원에게 집단 폭행당한 사건의 책임 논란에서 경호처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조미현 정치부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