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주소 안 쓴 자필유언장 무효"…'유언의 자유' 지나치게 제한

입력 2017-11-17 19:35
수정 2017-11-19 09:25
<27> 자필증서유언의 효력
(대법원 2014년 9월26일 선고 2012다71688 판결)



유언은 유언자가 남긴 생전의 최종 의사에 법적 효과를 인정하고 사후(死後)에 그 의사의 실현을 보장하기 위해 인정되는 제도다. 민법상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口授)증서 5종으로 규정돼 있는데(제1065조),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自署)하고 날인해야 한다(제1066조 제1항).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문자를 알고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편하게 타인의 관여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비용 부담도 없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문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용할 수 없고 위조나 변조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며 유언자의 사후 본인의 진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민법은 ‘유언은 본법에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생(生)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엄격한 방식주의를 규정하고 있다(제1060조). 그 이유에 관해 대법원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의하면 자필증서 유언의 다른 모든 요건은 충족됐으나 ‘주소의 자서’라는 요건만 흠결된 경우, 즉 유언자가 전문과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까지 했으나 유언서에 ‘주소’를 기재하지 않은 경우에 그 유언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예외 없이 무효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대법원 2014년 9월26일 선고 2012다71688 판결’은 이런 입장에서 주소가 누락된 자필증서 유언은 무효라고 판시했다.

주소를 명확히 기재 않은 자필유언장

이 판결의 사실관계를 들여다 보자. A는 2005년 11월2일께 ‘본인(A)은 모든 재산을 아들(원고)에게 물려준다(서울 강남구 일원동 집 기타 등). 사후에 자녀 간에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이것을 남긴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자필로 작성했다.

A는 이 사건 유언장의 말미에 작성 연·월·일(2005년 11월2일), 주민등록번호, 성명을 자서한 후 날인했고, 작성 연·월·일 옆에 ‘암사동에서’라고 기재했다. A는 2005년 10월13일부터 2008년 9월6일 사망할 때까지 ‘서울 강남구 일원동 *** 제1층 제1호’(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 한다)에 주민등록이 돼 있었으며, 원고는 2005년 9월22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 202호’에 주민등록을 마친 후 2009년 9월22일께까지 위 주소지에서 거주했다. A는 2008년 9월6일 사망했는데, A의 딸인 피고는 2008년 9월6일 상속을 원인으로 A의 상속재산인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해 원고, 피고 각 2분의 1씩 지분을 공유하는 것으로 지분이전등기를 마쳤다.

원고는 이 사건 소유권이전등기는 A의 유언에 반하는 것이므로 원인무효로 말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가 2005년 11월2일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원고에게 유증한다는 내용으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피고는 이 사건 유언장에 A의 주소가 명확히 기재되지 않은 이상 위 유언장은 유언의 요건과 방식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1066조 제1항에 반해 무효이고, 따라서 이 사건 소유권이전등기는 피고의 상속분(2분의 1)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고 주장했다.

제1심 판결은 우선 A의 유언에 유언전문, 연·월·일, 성명,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돼 있고, A의 도장 및 무인(拇印)이 찍혀있으나 명확한 주소의 기재는 없이 ‘암사동에서’라고만 기재돼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위 ‘암사동에서’라는 기재는 주소라고 하기 어렵고 자필증서의 작성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민법 제1066조에서 자필증서의 요건으로 정한 주소의 기재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래서 원고의 피상속인인 A가 위 자필증서의 기재 당시 실제로 암사동에 거주하고 있었다거나, 주소 기재가 없더라도 유언의 작성자가 A임을 특정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 자필증서가 유언으로서의 효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원고가 항소했다. 제2심 판결은 자필증서 유언에서 말하는 ‘주소’는 유언자의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이면 되고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될 곳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또 이 사건 유언장 작성 당시 A가 만 76세의 고령이고, 원고는 A의 외아들이며, A가 이 사건 부동산을 B에게 임대해 준 사정 등을 감안하면, A의 주된 생활근거지는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이 사건 부동산이라기보다는 원고가 거주하던 위 ‘암사동 *** 202호’일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이어 이 사건 유언장에는 A의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돼 있으므로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 등을 확인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유언장은 A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해 민법 제1066조 제1항에서 정한 요건에 부합하게 작성된 것으로서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민법에 정해진 요건·방식에 부합해야

이에 대해 다시 피고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법으로 정해진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면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6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하고 날인해야만 효력이 있다고 판결했다. 유언자가 주소를 자서하지 않았다면 이는 법으로 정해진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으로서 효력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유언자를 특정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해서 달리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자서가 필요한 주소는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곳일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민법 제18조에서 정한 생활의 근거되는 곳으로서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춰야 한다”고 판시했다.

설령 A가 원심 인정과 같이 원고의 위 암사동 주소지에서 거주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A가 이 사건 유언장에 기재한 ‘암사동에서’라는 부분을 다른 주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춘 생활의 근거되는 곳을 기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따라서 이 사건 유언장은 주소의 자서가 누락돼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나므로 그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주소 기재는 유언자 인적 동일성 확인 목적

우리 민법이 자필증서 유언의 유효요건으로 명시적으로 주소의 자서를 요구하고 있는 이상 이 같은 대법원 판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필증서 유언에 주소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은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확인하려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유언자를 특정하는 데 지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주소가 기재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유언의 효력을 부인할 경우 유언의 자유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필증서 유언의 요건으로 ‘주소의 자서’는 삭제하는 방향으로 민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 日·獨·佛보다 깐깐한 국내법의 '자필유언 유효요건'

우리 법이 요구하는 자필증서 유언의 유효요건은 비교법적으로도 매우 엄격한 편이다. 우리 민법은 ①전문의 자서 ②연·월·일의 기재 ③주소 및 ④성명의 자서 ⑤날인을 요구하고 있는데,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①과 ④만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고, 프랑스와 스위스는 ①, ②, ④를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은 ①, ②, ④, ⑤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민법상 자필증서 유언에 의한 방식이 지나치게 피상속인의 유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이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민법을 개정할 필요는 없는지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구태 < 조선대 법과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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