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대결장 된 '숙의 민주주의 실험'

입력 2017-10-15 18:50
현장에서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 고경봉 기자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일 권고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건설 중단, 건설 찬성 측 중 패한 쪽이 이 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국민의 절반가량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애초 공론화에 맡길 사안이 아니었던 데다 기간도 턱없이 짧았다”고 지적한다.

2014년 원자력 분야 첫 번째 공론화위원회인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 위원장을 맡았던 홍두승 서울대 교수는 “수십 년간 이어질 국가 에너지 정책 기조를 불과 3개월 만에, 그것도 비전문가 토론으로 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탈원전 정책과 별개로 신고리 5·6호기 처리 방향만 공론화에 맡기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부 의도와 다르게 3개월간의 공론화는 ‘반(反)원전 대 친(親)원전’ 구도로 진행됐다. 여기에 에너지 정책과는 무관한 단체들까지 끼어들었다. 건설 중단 측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노동계 단체까지 이름을 올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국가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화위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 장으로 변질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공론화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시민참여단에 제공할 자료 내용을 놓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파행을 거듭했다. 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1호 숙의민주주의 실험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3개월간의 공론화 과정이 허술했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국민이 수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홍 교수는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당시 원자력위원회,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정치권이 합의한 뒤 진행됐다”며 “그런데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대표성도 없는 단체와 비전문가들이 모여 3개월 안에 다시 정하라’고 한 다음 뒤로 빠진 것은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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