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안보리 결의안 미흡 땐 일방적 제재 검토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으로 보긴 어렵다"
시진핑 이어 푸틴까지…북핵 외교 '산 넘어 산'
[ 이미아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사진)은 10일 북한과 거래한 중국 등 제3국 기업들을 일괄 제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해 “미국 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이후 정부의 대북 제재 옵션을 묻는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 질의에 이같이 말했다. 우리 정부 당국자가 대북 제재와 관련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공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독자 제재에 속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이 이란 핵 문제 해결에 사용한 수단으로, 중국의 대북 압박을 견인할 강력한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가나
강 장관은 대북 추가 제재와 관련해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든 일반 제재든 (대북) 경제 제재를 최대한 가한다는 입장으로 안보리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보리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일방적인 제재도 적극 검토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부분은 저희와 긴밀히 공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또 독일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세컨더리 보이콧이 논의됐는지에 대한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물음에는 “정상 간 나눈 말씀에 대해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하고 난 직후에 열린 회담이었기 때문에 추가적 제재 압박에 대해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강 장관은 중국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할 경우 예상되는 중국 입장을 묻자 “구체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을 거명하기는 민감한 부분”이라며 “기본 방향은 특정 국가가 아니라 북한과의 거래에 초점을 두고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새로운 변수
강 장관은 북핵 해법을 놓고 형성된 ‘한·미·일 대(對) 북·중·러’ 대립 구도와 관련해 “핵 폐기 방법론 차이에서 나온 것이지 신(新)냉전 구도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소식통들은 중국에 이어 러시아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외교에 새로운 암초로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는 최근 북한의 ‘화성-14형’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성명 채택을 무산시키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북핵 문제를 공동성명에서 제외시키는 데 막후 실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러시아의 태도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러시아는 그동안 6자회담 당사국이면서도 한반도 문제를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며 “한반도 문제는 대부분 중국이 직접 언급하고, 러시아는 옆에서 거들어 주는 모양새였다”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미국을 의식해 동북아에서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고 진단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3차 동방경제포럼에 문 대통령을 주빈으로 초청하고자 한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 정부가 2015년부터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 및 주변국과의 경제 협력 활성화를 목적으로 열고 있는 행사다. 푸틴 대통령은 이 행사를 통해 유라시아 지역에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다.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는 미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동북아 문제에 직접 나선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지금처럼 전면적으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로선 다자 외교와 관련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 산맥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