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반이민정책' 미국인 고용 늘고 임금 상승할까

입력 2017-04-07 18:46
수정 2017-04-08 07:44
이상은 기자의 Global insight


[ 이상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反) 이민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인 중 이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급하게 취임 직후 관련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법원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미국 사회의 문은 닫혀 가는 중이다.

지난 3일에는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정보기술(IT) 분야 이민자들을 겨냥한 조치다. 관련 학위 증명서도 제출하고,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하며, 임금을 얼마 받을지도 조사받아야 한다.


미국 이민서비스국은 “미국 회사가 해당 직종에 능력이 있는 미국 사람을 찾지 못한 경우에만 외국인을 뽑아야 한다”고 배경을 밝혔다. ‘미국인 우선 고용’ 규칙이 생긴 것이다.

이런 정책을 쓰면 미국인 고용이 늘어나고 미국인 임금도 상승할까? 미국 역사의 전례를 살펴본 두 편의 논문이 지난 2월 발간됐다.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최근 소개한 이 논문들에 따르면, 그 대답은 고급 인력 시장에 관해서는 ‘예스’지만 단순 인력 시장에서는 ‘노’일 가능성이 높다.

존 바운드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연구진은 1994년부터 2001년 닷컴 거품 붕괴 때까지 미국 IT 업계가 H-1B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 노동력을 대거 수혈한 시기를 분석했다. 이들은 만약 H-1B가 시행되지 않아 외국인 인력 유입이 1994년 수준에 머물렀다면, 미국 컴퓨터 전문가의 임금은 2.6~5.1% 상승했을 것이고 이들을 위한 일자리 수는 6.1~10.8% 증가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컴퓨터 전공자와 다른 전공자 간 대체 가능성이 낮을수록 미국인 전문가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그 비용도 컸다. 연구진은 외국인 수혈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관련 기업의 이익률이 낮았을 것이고 IT 상품 가격도 1.9~2.5% 상승했으리라고 분석했다. 외국인 수혈을 통해 미국 IT 업계가 더 부흥했고, 소비자들이 혜택을 누렸다는 뜻이다. 이 논문은 외국인이 혁신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민자 혹은 이민 2~3세대가 실리콘밸리의 주역으로 우뚝 선 수많은 사례를 보면 ‘미국인만의 실리콘밸리’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미국 워싱턴의 세계개발센터 소속 마이클 클레멘스 등 연구진이 쓴 두 번째 논문은 좀 더 옛날 이야기다. 1942년부터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의 몇몇 주는 농장에 일손이 부족해지자 멕시코인들을 특정 계절에만 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수작업 노동력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브러세로(bracero)’라고 불렀다. 이들이 농장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까지 늘어나자 그때도 지금처럼 미국인을 우선 고용하라는 목소리가 커져서 1960년대 초부터 1965년까지 각 주에서는 이 제도를 퇴출했다.

그래서 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올랐을까? 1950~1970년대 시간당 농장 노동자 임금 추이를 보면 오르긴 올랐다. 그러나 브러세로 제도가 있었던 주와 그렇지 않았던 주의 상승률은 거의 같았다. 브러세로 노동력 비중이 20%를 넘었던 주와 그렇지 않았던 주도 큰 차이가 없었다. 멕시코인 노동자가 빠져나가긴 했지만 미국인 노동자가 받은 혜택은 뚜렷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농장주들이 미국인 노동자를 더 고용하거나 임금을 올려주는 대신 노동력을 덜 써도 되는 신기술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두 논문이 다룬 것은 옛날 일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내쫓으면 곧바로 자국 노동자 살림살이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정치인의 말이 듣기에 좋더라도 쉽게 혹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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