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시공사 교체 움직임
설계변경·공사비 증액 갈등 "건설사에 휘둘리지 않겠다"
시공사 해지 총회 잇달아
건설사들 "억울하다" 항변
새 집행부 들어선 단지들이 금융비용·인건비 상승 등
이해 못해 벌어지는 일
[ 문혜정 기자 ]
재건축·재개발조합들이 시공사 교체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사업비 대여 등에 비협조적이거나 설계 변경 등을 이유로 공사비를 올리려는 시공사를 갈아치우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 회복에 따른 수익성 개선, 건설사 간 과당 수주 경쟁 등에 힘입어 정비사업 주도권이 건설사에서 조합으로 넘어갔다”며 “조합들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시공사 교체 카드를 빼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말마다 시공계약 해지 총회
1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장위6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시공사 교체를 검토 중이다. 시공사인 삼성물산·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이 2010년 시공사 선정 당시 제시한 금액보다 1000억원 이상 높은 공사비를 달라고 요구해서다. 조합은 시공사와 진행 중인 막바지 협상이 결렬되면 조만간 대의원회의를 열어 공사도급 가계약 해지를 결의할 예정이다. 사업이 몇 달 늦어지더라도 새 시공사를 선정해 공사비를 낮추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주택재건축조합은 18일 조합원 총회를 열어 2014년 GS건설·포스코건설·롯데건설과 맺은 시공계약을 해지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강남구 대치동 구마을3지구재건축조합(시공사 대림산업)도 25일 시공사 해지 안건 등을 놓고 조합원 정기총회를 열기로 했다.
지난 1월 기존 시공사(포스코건설)에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경기 과천주공1단지 재건축조합은 26일 새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를 연다.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을 시공사로 선정한 강동구 고덕주공3단지재건축조합도 시공사 교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들이 설계 변경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매 주말 시공 계약 해지 총회가 열릴 예정”이라며 “더 많은 조합원이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말에 총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건설사에 안 휘둘릴 것”
불과 2~3년 전만 해도 건설사 입김이 조합보다 셌다. 사업비 조달 등을 시공사에 의존하는 데다 부동산 시황이 좋지 않아 미분양 위험도 커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은 사업비 지원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설계 변경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건설사가 오히려 ‘을’의 신세가 되고 있다.
방배5구역의 경우 수천억원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금에 대한 건설사 보증, 시공사가 대여해주기로 약정한 조합 운영비 등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발단이 됐다. 조합은 조합원 지위를 포기한 주민들의 지분 매입을 위해 필요한 매도청구금액이나 조합사업비 대여를 시공사가 제때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만길 방배5구역 조합장은 “조합 집행부와 논의 없이 홍보요원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는 대형 건설사들의 사업 행태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주간 시공사인 GS건설 측은 “조합이 제시한 도급제로의 사업 방식 전환, HUG 보증, 사업경비 지급 등 요구 조건을 대부분 수용했는데도 조합이 계약 해지를 강행해 안타깝다”고 했다.
과천주공1, 성북 장위6구역, 구마을3지구 등은 설계 변경이나 자재 고급화 등으로 공사비가 늘어난 게 문제가 됐다. 한 조합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당시에는 저렴한 시공을 약속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공사비를 올려받는 관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건설사들은 억울하다는 태도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금융 비용과 인건비, 자재비 등이 모두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도 맞춰야 해 공사비를 증액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이 개발이익과 손실을 시공사와 공유하는 ‘지분제’에서 건설사에 단순 시공비만 지급하는 ‘도급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며 “분양가 상승에 따른 개발이익을 시공사와 나누기 싫어서 트집을 잡아 시공사를 바꾸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는 조합 중에는 지난해 이후 조합장 등 집행부가 바뀐 경우가 많다. 새 집행부는 기존 시공사와의 유대감이 약해 적극적으로 조합원 이익을 위해 뛰고 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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