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국가 R&D 사업 투자 효율성이 낮은 이유

입력 2017-03-01 18:23
특성이 다른 과학과 기술 뭉뚱그려 관리
전시성 사업에 행정력과 자금 쏟아부어
경험과 지식 축적할 수 있는 체계 갖춰야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경제성장률이 몇 년간 2~3%대에 머물면서 기업채산성 악화, 폐업, 장년층 및 청년층 일자리 부족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경제가 살아나야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목적의 정부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정부 투자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분야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한국 R&D 투자비는 국내총생산(GDP)의 5%인 19조1000억원으로 세계 5위 규모를 자랑한다. 그 성과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은 세계 12위, 표준특허 보유 건수는 5위(2014년 기준)에 올랐으며, 이로부터 우수한 과학기술 저변 구축과 인력 양성이 이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성과에 반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R&D 경쟁력 순위는 2009년 11위에서 2015년 19위로 떨어졌다. 기술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최근 몇 년째 50억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적자가 가장 크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 대한 기술무역수지 적자는 2015년 67억달러로 증가했으며 다른 기술 선진국에 대한 적자 상황도 개선되지 않고 여전히 수입 기술 의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약하면 그동안 정부의 R&D 투자로 상징적인 과학기술 성과지표인 논문과 특허의 양적 수준은 양호해졌지만, 그런 성과로부터 국가 경제가 얻는 긍정적인 질적 효과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R&D에서 이처럼 정부 투자 효율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과학과 기술의 특성과 목표, 그리고 성과 평가가 크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두 분야를 하나로 뭉뚱그려 관리하는 과학기술정책 거버넌스의 혼란을 들 수 있다. 과학은 자연현상의 법칙을 탐구하는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을 말하며 소립자로부터 거대한 우주 천체(天體)까지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미지의 연구 주제까지 대상으로 하니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실패를 용인할 수 있기도 하고 연구방법론을 달리한 재도전도 허용될 수 있다. 기술은 과학이 만들어 낸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주제를 연구하는 구체적인 학문으로 기계공학, 화학공학, 재료공학, 전기·전자공학, 컴퓨터공학 등이 이에 포함된다. 기술 개발은 대체로 명확한 연구 목표가 설정되고, 그에 적합한 방법론의 타당성까지도 검토된다. 따라서 기술 개발에서 완전한 실패란 허용되기 어려우며, 부분적인 실패의 경우에도 그 이유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동일 기술 주제에 대한 중복 또는 반복 연구가 허용되지 않는 한국의 현 실정에서는 특정 주제의 연구 실패는 자칫 해당 기술의 장기적인 공백 상태를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를 만든다. 1970년대에 이공대학을 크게 이과대학(college of science)과 공과대학(college of engineering)으로 나눠 교육과 연구, 지원정책을 달리한 것도 과학, 그리고 기술의 특성에 따른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이었다.

과학 분야에 적용되는 과학기술정책 논리를 기술 분야에서 적용하거나, 기술 분야에서 통용되는 엄격한 운영과 성과관리정책을 과학 분야에 적용하는 시도는 지양해야 마땅하다. 과학과 기술의 융합 또는 통합이란 이슈로 어중간한 R&D 사업을 편의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성과관리에서 양쪽을 오가는 편법으로 운영되던 전시적 정부 사업들은 불필요한 행정과 정부 투자의 낭비를 유발할 뿐이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식의 혼란으로 정부 조직과 정책에서 과학과 기술을 떼었다가 붙이기를 반복하는 정치적 판단은 지양해야 한다. 빈번한 과학기술 관련 정부체계의 변동은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쌓아 온 경험과 지식 축적을 훼손해 안정성이 요구되는 R&D 환경을 해치고 연구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비효율성의 원인이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서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