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2) 천금을 잃고 세기의 망신을 당한 나라

입력 2016-12-16 11:25


(편집자주-해운업계 원로 정남돈 선생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본지 기자에 보내온 글입니다. 정남돈 선생은 1990년 조양상선이 국내 최초로 세계일주항로를 개척할 때 개발팀장을 맡아 활약했고, 이후 세양선박 대표 등을 지냈습니다. 모바일한경은 앞으로 정 선생이 보내온 해운업 관련 기고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향후 준비물

이젠 일으키기도 추스르기도 힘들게 되었다. 누가 앞장서 이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나. 똘똘한 메가 운항 정기선 관리팀들은 이제 뿔뿔이 헤어져야 한다. 그 많은 영업적 파트너를 멀리하고, 그 돈줄을 다 포기하고 애국심의 보따리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많은 해외 경험과 적응력, 외국과의 협상력을 뒤로 하고 이젠 집에서 쉬어야 한다.

그렇다고 연안 피더선에 자리 잡아 일을 할 수도 없다. 막연히 한 항구로 왔다 갔다 하는, 화물을 싣고 내리고 이삭 줍듯 하는 연안 영업. 미지의 희망과 글로벌 영업의 의지가 없는 그런 운영은 바로 그날 시작하자마자 지쳐버리는 것이다. 소 잡는 칼은 결코 닭을 잡는데 쓰이지 않는데... 허탈할 뿐이다. 결국 인간사 새옹지마인줄 알면서도.

필자도 그랬지만 해운의 경력은 해운현장 외는 써 먹을 데가 없다. 젊어 맥시멈 정력을 쏟다 보면 중년 후반부에는 저절로 노쇠해 지는 것이다. 거기다 부도나 청산이 되면 회사와 같이 인생은 의욕을 동시에 잃는 것이다. 그 기억이 맴돌아 멍해지며 지내는 거다. 선행 조상들이 그랬듯 구슬픈 아리랑 같이 그렇게 마감한다.

엎어진 이 정기선 해운 산업 문제를 누가, 어떻게 재건축 할까? 이젠 자금을 투하할 근거도, 담보 설 점보제트기도 없는데. 누구를 빗대 또 다시 선단을 구성하는 자금을 모으나? 인간은 넘쳐나고 우리 젊은 일꾼이 갈 곳이 없는데 어쩌나? 아프리카 중국 인도는 배타적·폐쇄적인데다 무지해 피해야 한다. 대신 북아프리카와 지구 저 넘어 남미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데 어찌 할꼬. 한민족의 대항해시대는 한진해운의 마감으로 여기서 바다장사 마감이 아닌가 싶다. 지금 시작해도 출발선이 한참 뒤라 선두 근처에도 못 가니 말이다.

한마디로 황량하다. 떠나버린 그 충실한 미주 황금항로(연 3~4조원의 운임을 모아 주던)그 항로의 고객을 멀리 보내고, 그것도 얼굴 붉히며 보내 버렸는데 돌아 올 리 만무하고...

영업에 필요한 고객이 없는데 무슨 그림, 무슨 항로의 집을, 어떤 사이즈로 얼마나 크게 지어야 할지. 바닥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림이 되지 않고 그릴 수 없도록 상황이 꼬여, 현장은 황폐해진 것이다. 금융관련자들이 옥수수도 못 심을 땅이 되도록 뭉개버린 것이다. 이 땅을 어찌해야 하나, 몇 년을 더 고생해야 하나? 무슨 씨앗이 크겠나? 어림없다, 우리가 시작할 때 그들은 날개를 달아 멀리 날라 갈 것인데 지금 가면 뭣해, 우리가 도달하면 벌써 시장은 파시일 거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은 영원히 대양해운이 자라지 못하는, 쇳덩어리도 넣으면 녹아 버리는 화탕지옥(火湯地獄)의 척박한 땅이란 말인가. 아니면 농부가 게으른 탓인가? 아니다 한번 잘못한 운전으로 그 차를 폐차장으로 보내면 주인이 자격이 없는 것일 게다. 주인을 바꾸어도 시절인연이 다한 것이다.

4. 결론

문제는 고객만이 아니다. 이 큰 메가쉽은 결코 혼자서 운영을 못한다. 누구와 같이 공유하며 선창을 채우고 비용을 분담하며, 효율적 비용으로 이 세계를 누빌까가 더 걱정이다. 즉 고객은 차치하고 선박을 운항할 동조(동업자)파트너가 없으니 큰 배(1만3500TEU급 이상)를 건조할지 말지 결정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진퇴양난이다.

그 배가 또 항로로 진입하면 경쟁이 심할 텐데 누가 파트너로 조인(Join) 하겠는가? 누가 호랑이 새끼에게 우유를 주듯 선뜻 합류시키겠는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선대를 완전히 바다에서 진입 못하게 왕따 시키는 것인데 우리 컨소시엄에 합류하겠는가 말이다. 이미 포승줄을 감는데 성공하였는데 또 살릴 기회를 주겠는가 말이다.

여기가 그 심각한, 넘기 힘든 고개다. 그래서 해운이 우리 경제의 기둥이란 점을 그렇게도 강조한 것이다.

필자는 우리 ‘해양 물류산업’이 다시 일어날 기회가 적다고 본다. 때도 시(時)도 시절도 다 잃은 지금 판세는 ‘종(鐘)쳤다’. 이제 식민백성으로 사는 수밖에.

한 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돈은 돈대로 잃고, 적은 돈이 아닌 ‘천금’을 몽땅 잃었다.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그리고 이젠 바다에서 타 선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어느 누구도 같이 동업할 기회마저 잃어버린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엉터리 정부 금융팀이 변명하면 뭐해? 나라 기둥 부러지는 구경만 남았다고 본다.

혼자 살겠는가? 누가 혼자서 싸우나? 2차 세계대전에서 반도체 전쟁에 이르기까지, 큰 싸움은 모두 합동으로 떼를 지어 연합군을 만들었다. 사업도 그런 것이다.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컨소시엄으로, 메가 금융으로. 해운도 최소 자본금 20조원 이상을 갖고 바다에 나가야 한다. 그래야 건방진 은행이 세계를 상대로 무식한 장난을 부리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악의적인 쇠사슬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이젠 한국의 해운도 정신적으로 성숙해 자신의 위치를 알고 세계 판세를 잘 읽고 정신적으로 재무장하고 이 외골수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까를 연구해야 한다. 그 시간은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요, 빠져 나간 후 그때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될 것 같다.

그런데 당분간은 그릴 계획도 없어 보인다. 지치고 몰라서 못 그린다. 자격도 없어졌다. 아쉽고 안타깝다만 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능력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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