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 소비자가격, 도매가격만큼 안 내려
■ 디플레 우려에 소비 지출 늘지 않아
[ 이상은 기자 ]
저유가는 경제에 ‘약(藥)’일까, ‘독(毒)’일까. 과거에는 당연히 약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유가가 떨어지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 성장이 촉진된다고 생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러나 2014년 6월 이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30달러대까지 65%가량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세계경제 회복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 ‘저유가 패러독스(역설)’가 벌어지고 있다고 6일 보도했다.
1년 전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까지 떨어졌을 때 경제 전문가들은 저유가 효과로 소비가 늘어나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3.5%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배럴당 20달러 떨어질 때마다 세계 총생산(GDP)이 0.5~1.2%포인트 증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분석대로라면 지금쯤 세계는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씨티그룹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낮추고 세계경제가 불황의 초입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FT는 소비자 가격이 도매가격만큼 떨어지지 않은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자국 내 전체 에너지 이용량의 70%를 수입하는 인도에서는 정부가 유가 하락을 기회로 연료 관련 보조금을 삭감하고 원유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재정적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소비자는 저유가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통화정책의 제약도 이유로 꼽았다. 유가가 떨어지면 물가가 내려가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생긴다. 과거 유가 하락기엔 이를 상쇄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내릴 여지가 없어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노출됐다.
모리스 옵스펠드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저금리 국면에서 유가가 내리면 소비자는 물가 상승을 우려하지 않기 때문에(디플레) 소비지출 진작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FT는 미국에서는 지난해 가구당 1000달러씩 기름값을 아끼는 효과를 봤지만, 경제 전망에 대한 확신 부족으로 오히려 저축률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절약한 돈으로 다른 것을 사는 대신 은행에 도로 갖다 넣었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기업 수익성이 높아지고 무역흑자가 늘어나는 데 저유가가 도움을 줬으나 디플레이션 압력 때문에 소비가 부진하다고 설명했다.
옵스펠드 이코노미스트는 “역설적으로 저유가 혜택은 유가가 어느 정도 오르고 선진국이 현재 저금리 환경을 극복하는 데 진전을 이뤘을 때 나타날 수 있다”고 관측했다. 현 상황에선 저유가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고 경제가 회복되는 시기에 뒤늦게 힘을 쓸 것이란 분석이다. FT는 “일러도 내년에나 저유가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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