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묵은 관행 타워크레인 월례비…4년전 근절시도는 실패로
국토부 "월례비 부담, 분양가 인상으로 결국 소비자에 전가"
건설노조 "월례비 없다면 초과근로·위험작업도 없어야"
'임금이냐 아니냐' 성격 규정한 법원 판결도 1·2심 엇갈려
(세종=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월례비는 건설현장에서 기초·골조 공사를 담당하는 건설 하도급 업체들이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지급해온 일종의 '웃돈'이다.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와 고용 계약을 맺은 조종사들은 이에 따른 월급을 받고, 시공사에서는 월 500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 이상의 월례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사 일정을 맞추는 게 중요한 시공사 입장에서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독촉해 공사를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현금을 조금씩 쥐여주던 1960∼1970년대 관행이 오래도록 굳어져온 것이다.
월례비 지급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기사들은 자재를 천천히 들어 올리거나, 인양을 거부한다. 타워크레인 위에서 현장을 내려다보며 작업자들이 안전모를 벗고 있는 모습을 찍어 고발하는 방식으로 건설사를 압박하기도 한다.
건설공사는 타워크레인이 멈추면 중단되는 특성이 있기에 시공사들은 결국 월례비를 지급하게 될 수 없다며 피해를 주장한다.
정부는 이런 월례비 관행을 건설현장 불법행위의 핵심으로 꼽는다. 건설사들의 월례비 부담은 결국 분양가 인상 등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점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실태조사를 통해 신고받은 전체 건설현장 불법행위(2천70건) 중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이 58.7%(1천215건)를 차지할 정도다.
이 조사에서 타워크레인 기사 438명이 월례비 243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기사 한 명이 연간 최대 2억1천700만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 8일 전문건설협회가 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서 연단에 오른 충청지역 건설사 대표는 "타워크레인 기사가 월 25일을 근무한다고 할 때 유급 수당을 합치면 조공(반숙련공)이 400만원, 기능공은 700만원 정도"라고 했다. 월급보다 비공식적으로 받는 월례비가 더 많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월례비를 타워크레인 기사의 일방적 강요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건설회사가 안전하지 않고, 무리한 작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발생했다는 항변이다.
일부 타워크레인 기사들도 월례비는 시공사들이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 요구하는 연장 근로의 대가, 크레인 조종 외 필요한 공사 업무를 하는 대가로 받는 일종의 성과급이라고 주장한다.
국토부가 이달부터 월례비를 받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의 면허를 정지한다는 강수를 두자,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거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을 위협하는 작업 요구를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건설노조는 "월례비를 뿌리뽑는다는 건 오갔던 돈을 근절하는 것은 물론 그 대가로 진행된 관행적인 위험 작업과 초과 근무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례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엇갈린다.
1심 법원은 임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지난달 2심 법원은 "하청인 철근콘크리트 업체의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으로,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법은 종합건설사의 철근·콘크리트 하도급 업무를 수행하는 A건설사가 "받아 간 월례비를 내놓으라"며 타워크레인 조종사 16명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해 국토부는 "급여보다 높은 월례비는 정상적 근로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고 조종사의 요구에 따라 묵시적으로 지급해왔던 것이며, 월례비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면 합법적 근로계약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건설업계가 월례비를 없애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6월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들이 지급하지 않겠다고 뜻을 모았고, 이런 움직임에 다른 지역 업체들도 동참했으나 이후에도 월례비 관행은 지속됐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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