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지서 탈출한 우크라인 "거리의 시체들 차마 볼수 없었다"

입력 2022-05-09 14:48
수정 2022-05-09 14:51
러 점령지서 탈출한 우크라인 "거리의 시체들 차마 볼수 없었다"

"이지움 점령한 러시아군, 속옷까지 약탈해"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소도시 이지움에서 탈출한 우크라이나 주민이 현지의 참혹한 상황을 증언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8일 보도했다.

'엘레나'(52)라고 이름을 밝힌 이지움 주민은 러시아군이 마을을 점령한 이후 동네 유치원 지하실에 숨어 지냈다.

요리를 할 여유가 없어 동네 텃밭에서 난 채소로 끼니를 채웠지만 다들 가진 음식을 서로 나눴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러시아 점령군이 모든 것을 약탈했으며 심지어 사람들의 속옷까지 훔쳐 갔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차를 훔쳐 러시아군의 상징인 'Z' 표식을 한 후 도시를 돌아다녔다고 엘레나는 전했다.

그는 "러시아군들은 무장한 상태에서 종종 술에 취해 있었고, 기관총을 든 병사들은 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장갑차를 몰았다"고 말했다.

엘레나는 2개월을 유치원 지하실에서 살다 함께 생활하던 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피란길에 올랐다.

그는 "길거리에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며 "우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시신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고 BBC에 설명했다.

이지움을 빠져나온 엘레나 일행은 이틀이 걸려 상대적으로 안전한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폴타바에 도착했다.

그사이 수많은 러시아 검문소를 통과했으며, 검문소의 러시아 군인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을 때마다 러시아로 가고 있다고 속여야 했다.



지난달 초 러시아군이 점령한 이지움은 하르키우 동남부 도시로, 돈바스의 관문과 같은 요충지다.

이지움 시의회 의원인 막심 스트레르니크는 "도시의 80%가 파괴됐지만 아직 1만∼1만5천명의 시민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곳에는 물과 전기, 연료, 난방이 없고 하수처리 시설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BBC에 전했다.

그는 "도시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는지 추측할 수조차 없다. 의료기관이나 장례시설도 없고 사망자는 집 근처나 도시공원에 묻혔다"며 "이것은 끔찍한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이지움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기 시작했고,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시민의 가족들은 애가 타는 상황이다.

이지움 시민들이 탈출하도록 돕는 자원봉사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동명이인)는 휴대폰 연결이 될 때마다 이지움 주민들에게 피란 버스의 존재를 알리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약 200명을 대피시켰다.

그는 이런 구조 작업이 매우 위험하다며 "지난주에는 마을 사람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저격수가 쏜 총에 3명이 죽고 3명이 다쳤다"고 BBC에 주장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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