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초강력 규제 충격파 던지고 뒷수습 반복…불안한 세계 증시
사교육 시장 초토화 이어 '게임은 정신 아편' 발언으로 시장 파문
시장과 전쟁하듯 거친 규제 일상화…'규제 몽둥이 힘 조절' 실패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 당국이 돌연 초강력 규제를 꺼내 세계 증시를 한바탕 혼란에 밀어놓고 나서 사태의 파문이 커지면 부랴부랴 뒷수습에 나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작년 10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의 '설화'(舌禍)를 계기로 중국은 기술·교육·부동산 등 부문의 민영 기업을 상대로 한 규제를 대폭 강화 중인데 전례 없이 거친 규제가 일상화되면서 당국이 '규제 몽둥이'를 휘두르는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일이 빈발하는 모습이다.
◇ '너무 나갔나' 수습 나섰지만 시장 혼란은 여전
3일 중국을 비롯한 세계 온라인 게임 업계는 게임을 '정신적 아편'으로 빗대 비난한 중국 핵심 관영 매체의 보도로 한바탕 충격을 받았다.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경제지인 경제참고보(經濟參考報)는 '정신적 아편이 수천억 가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중독 문제를 지적하며 당국이 더 강력한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기사가 한층 더 강력한 게임 규제의 전조가 아니냐는 공포가 확산하면서 중국 게임 대장주 텐센트와 넷이즈 주가가 3일 각각 6%대, 7%대 폭락한 것을 비롯해 홍콩, 중국 본토, 한국, 미국, 유럽 등지의 게임 산업 주가가 동반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파문이 커지자 경제참고보는 해당 기사를 온라인에서 급히 내리고 '정신적 아편'이라는 표현을 들어낸 새 기사로 대체했다.
당국이 이런 조치를 통해 경제참고보의 해당 기사가 당국의 입장을 전적으로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에둘러 시장에 던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뒷수습 시도에도 전날 텐센트 한 종목의 시가총액만도 한때 600억 달러(약 69조원) 달러 이상 증발하는 대혼란이 초래됐다.
당국이 '정신적 아편' 발언을 일단 주워 담았지만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온라인 게임을 청소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유해 산업'으로 보는 보수적인 시각을 뚜렷이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중국 게임산업에 드리운 먹구름이 걷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경제참고보의 아편 언급 '실수'는 중국의 핵심 주류 세력이 게임 산업을 얼마나 부정적 시각에서 보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기에 문제의 기사가 수정됐음에도 시장의 경계 심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이 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 홍콩을 영국에 영구 할양했기에 아편은 중국에서 매우 민감한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시장에 갑자기 큰 충격을 주고 시장을 달래는 일은 최근에도 있었다.
중국은 지난 23일 1천200억 달러(약 137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중국의 거대한 사교육 시장을 사실상 초토화할 초강력 규제를 발표했다.
이는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취한 가장 강력한 시장 규제였다는 점에서 공포가 사교육 분야를 넘어 기술·부동산·바이오 등 전 분야로 급속히 번져 중국 기업 주가 대폭락 사태를 불러왔다.
지난 26∼27일 양일간 중국 본토 증시에서만 4조3천억 위안(약 762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하고 세계 증시에서 1조 달러에 가까운 공황 매도가 발생하고 나서야 중국 당국은 자국의 사교육 시장 '정돈' 조처가 세계 자본시장에 가져온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됐다.
이에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팡싱하이(方星海) 부주석(차관급)이 당시 긴급히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심야 온라인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사교육 시장 규제가 중국 내부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서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세계 자본시장에 드리운 '차이나 리스크'
그렇지만 중국 당국은 작년 10월 마윈(馬雲)의 '도전'을 계기로 마치 민영 경제 부문과 전쟁을 벌이듯이 기술, 교육 등 분야에서 초강경 규제를 이어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점차 절제력을 잃고 '규제 몽둥이'를 너무 거칠게 휘두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세계 자본시장이 긴밀히 연결된 오늘날 중국의 이런 거친 행동은 중국의 국경을 넘어 세계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미국 투자자들만도 중국 기술주에만 1조 달러(약 1천144조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 투자들이 중국 주식을 직접 보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텐센트, 알리바바 등 주요 중국 빅테크 주식 보유 금액은 총 9억9천327만 달러(약 1조1천363억원)에 달한다.
펀드사 등 세계 기관 투자자들이 추종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이머징 마켓 지수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빅테크인 알리바바와 텐센트 양사의 비중만도 10%에 달한다.
MSCI 이머징 마켓 지수에서 중국 기업들의 비중은 10년 전 17%가량에서 현재 37%로 높아졌다. 중국 기업의 주가 변동이 이제는 세계 투자자들의 이익에 직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화요일 나타난 홍콩 상장 중국 기술주들의 폭락 사태는 시장이 중국 정부의 '인터넷 공룡'에 대한 불쾌감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마윈의 대담한 당국 공개 비판을 계기로 시진핑 총서기를 필두로 한 중국 공산당이 인터넷 사업 분야에서 급성장하며 큰 힘을 갖게 된 민간 자본가들을 잠재적인 체제 위협 세력으로 본격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민영 경제 전반에 대한 '질서 재구축'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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