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다 문닫아도 학교만은'…독일의 사투
"학력격차, 소득격차로 이어져 문 열어야"…저소득층 자녀 수업손실 피해 커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학교서 확진·격리 속출…방역 우왕좌왕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이 학교 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심각한 재확산으로 지난 2일부터 부분 폐쇄 조치가 실시되는 가운데 정상 수업이 실시되고 있다.
이미 최근 하루 확진자가 2만 명을 훌쩍 넘어서기도 하고, 검사 체계에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다.
최근 중환자실로 밀려드는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받기 위해 보건당국은 시급하지 않은 일반 환자의 수술을 연기하도록 조치할 정도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2일 폐쇄 조치에 대해 주요 경제 활동을 유지하고 학교와 어린이집이 문을 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접촉이 필수적인 것들이 있다면, 다른 접촉은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분 폐쇄는 이달 말까지로 요식업은 포장 및 배달 영업만 할 수 있고, 공공·문화 시설도 문을 열 수 없다. 호텔도 사실상 영업이 어려워졌고, 상점은 10㎡당 손님 1명만 받을 수 있다.
프란치스카 기파이 연방가족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학교와 어린이집과 학교의 폐쇄는 최후의 단계"라고 말했다.
◇ "배움의 손실 보충 어려워"…학교가 감염 둔화 기능 연구도
독일 사회에서 학교 문을 닫았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학력 격차의 발생이다. 독일은 공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크고, 사교육 시장이 작다. 학교 수업이 중시되는 구조다.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담당관은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학생들은 학교가 필요하다'라는 온라인 토론회에서 대면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학력 격차가 소득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23일 슈피겔온라인에 따르면 토론회에서는 학생이 학교 폐쇄 등으로 수업을 듣지 못할 경우 평생 소득에서 1% 또는 3%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상당수의 교육 전문가들이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특히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학업을 보충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이 타격을 크게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슐레이허는 "배움의 손실을 보충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학자 유타 알멘딩거는 상반기에 학교 폐쇄 이후 학생들의 TV 시청 시간이 많아졌고, 학교 정상화 이후에도 운동 능력이 느리게 회복됐다고 경고했다.
독일에서는 학교가 문을 닫을 경우 맞벌이 부모의 자녀들이 학교 급식을 하지 못해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게 돼 영양에 문제가 생기고, 가정폭력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학교가 바이러스의 전파지가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등교론을 뒷받침했다.
서부 본에 있는 노동경제연구소(IZA)의 연구에 따르면 여름 방학 이후 수업 재개는 감염의 발생을 부채질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오히려 새로운 감염의 발생을 둔화시켰다고 분석했다.
◇ 신규 확진 급속히 늘면서 학교 위험도 커져…원격수업 전환 목소리도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어지면서 학교에서의 감염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하루 감염자가 수백∼수천명대일 때와 달리 지난달 말부터 1만 명을 넘어서면서 학교에서의 감염 경고음이 강하게 울리고 있다.
이제 학교에서 확진자 발생으로 반 단위, 학년 단위로 학생들이 격리되는 사례를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았던 학교들도 11월 들어 속속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교원단체는 학교에서의 방역 통제력이 상실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0월 말부터 검사 대기자가 쌓이고 방역 체계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수도 베를린에서는 학생이 확진되더라도 밀접 접촉자에 대해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통지도 못 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지난 6일자 슈피겔온라인에 따르면 이달 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만 학교에서의 확진자가 일주일 만에 5배로 증가했다.
최근 NDR 방송에 따르면 함부르크의 470개 학교 가운데 200개 학교에서 700건의 확진 사례가 나타났다.
학생들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한 당국의 의지는 아직 확고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역 행정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셈이다.
교육 권한을 각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다 보니 대처 방식이 다른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베를린주는 학교에서 확진자 발생시 해당 학급을 격리하는데,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감염된 학생들만 격리하도록 한다.
베를린의 한 학교에서는 최근 방역 대책을 논의하는 학부모 모임에서 학교 측이 실내 공간임에도 마스크를 벗도록 권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보도에선 최근 165개 학교가 교내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예 폐쇄했다. 독일의 전체 학교는 3만 개 정도다.
학교에서의 감염 확산 위험성이 커지면서 원격 수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의 도시 졸링겐은 원격 수업도 부분적으로 적용하자고 주 교육당국에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연정 소수파인 사회민주당의 보건 전문과 카를 라우터바흐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에서 학교 문을 여는 데 대해 "슈퍼 전파를 위한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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