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과부하 걸린 중국 의료체계 민낯 드러내"
NYT "환자 과밀·병상 부족 심각…플라스틱 서류철로 임시 고글 만들기도"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창궐을 계기로 허술한 중국 보건 시스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사는 샤오시빙(51)의 경우 발열과 호흡 곤란 문제로 보름 이상 고생하고 있지만, 병상 부족 등으로 인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간신히 지난 26일에야 입원에 성공했다.
그러나 샤오 씨는 아직도 우한 폐렴 검사조차 받지 못했다. 그의 아내인 펑시우는 이런 상황에 대해 "(환자를) 이리저리 공 차듯이 한다"고 말했다.
우한 폐렴으로 현재까지 중국에서만 2천700명 이상이 감염되고, 80명이 넘게 사망한 가운데 중국 정부는 이처럼 평소에도 과부하에 걸린 의료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지난 10년간 중국이 다른 일상생활 부문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으나 의료 서비스의 품질 개선은 정체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선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의사 진찰을 예약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만 한다.
그나마 가까스로 진찰 예약을 해도 의사와 만나는 시간은 단 2분에 불과하다. 독감 시즌에는 주민들이 병원 복도에 담요를 갖고 와 밤새 진을 치기도 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1차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너무 많은 사람이 종합병원으로 몰리는 형편이다. 평일에도 의사들은 200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진찰하느라 몸이 녹초가 된다.
이러한 취약점은 특히 우한처럼 빈곤 지역에서 더 두드러진다.
공황 상태에 빠진 우한 주민들은 이제 감기나 기침만 해도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막대한 업무량의 압박을 받고 있는 의사들, 일부는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비롯해 환자들로 넘쳐나는 병원 복도 등의 장면을 담은 영상들이 돌고 있다.
중국은 약 20년 전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겪었지만, 아직도 소도시의 많은 중국 병원들은 우한 폐렴 같은 주요 전염병에 대처하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한의 병원들은 온라인에 의료 장비를 급구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올린 것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인근의 더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는 상황이 더 절박하다.
우한이 속해 있는 후베이성의 8개 병원은 지난 주 N95 마스크, 안경, 외과용 마스크 및 가운 등을 구한다는 공지를 발표했다. 제대로 된 장비가 없다 보니 일부 의료진은 플라스틱 서류철을 오려서 임시방편으로 고글로 만들기도 한다.
미국외교협회(CFR)의 글로벌 보건담당 선임 연구원인 옌중황은 중국이 사스를 계기로 탄탄한 공중보건 구축에 많이 투자했지만 "이처럼 급작스럽고, 격심하고, 엄청난 것이 발생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위기 대응 방식도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평가다.
중국 전역에서 당국은 도시를 봉쇄하고 학교를 폐쇄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5천600만명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이런 봉쇄령은 특히 의료 장비가 절실한 병원들의 공급난을 더 가중시킬 소지가 있다.
의료 시설 공급이 달리자 지방 정부에선 열흘 만에 새로운 1천 병상 규모의 병원을 짓겠다고 발표하고, 다음 달 중순까지 1천300 병상 규모의 다른 새 병원도 준비될 거라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단 1주일만에 베이징에 새 병원을 건설한 사스 발병 당시 정부의 대응 지침을 따라한 것이다.
그러나 전염성이 워낙 강한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충분한 병상이 확보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것이 현실이다.
예일대 공중보건스쿨의 보건경제학 조교수인 천시는 종합병원의 '문지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치의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환자를)제대로 걸러내는 과정이 없으면 병원을 두 개 더 짓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로선 입증된 치료제가 없는 이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 보건당국은 의사들에게 전통 중의학 약재와 에이즈(HIV) 감염 치료에 쓰이는 항바이러스제를 복합해서 환자들에게 처방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역점을 둬 키우고자 하는 분야이긴 하지만, 전통 중의학 약재는 사스 때와 마찬가지로 우한 폐렴을 퇴치하는데 충분한 임상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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