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산불 연기로 韓교민도 고통…"아침에도 비상등 켜고 운전"
"심할 때는 100m 앞도 안 보여"…항공기 줄줄이 연착·결항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연기 때문에 아침에도 깜빡이(비상등)를 켜고 운전하는 상황이에요. 기침이 계속 나서 병원에 가보려고요."
보르네오섬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에 2011년부터 거주 중인 신성민씨는 19일 "올해 산불 연기가 최악"이라며 "역대 가장 심했던 2015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심한 것 같다"고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토로했다.
신씨는 "한국 교민은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며 "전에 담배를 피우다 끊었는데 최근 산불 연기가 훨씬 더 건강에 해로운 것 같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최근 일주일 이상 인근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기 때문에 뜨고 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어제는 이륙하려고 활주로로 가다가 포기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신씨가 거주하는 곳은 동부 칼리만탄의 쿠타이 바랏군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칼리만탄과 수마트라섬 6개 주에 산불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이달 들어 연기 피해가 더 심해졌다.
올해 1∼8월 인도네시아에서는 2천984곳에 산불이 나 32만8천700 헥타르(3천287㎢)를 태웠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매년 건기에 수익성이 높은 팜나무 등을 심고자 천연림에 고의로 산불을 내는 일이 반복된다.
특히 식물 잔해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퇴적된 이탄지(泥炭地·peatland)가 많다 보니 유기물이 타면서 몇 달씩 연기를 뿜어낸다.
이탄지는 일반 토양보다 탄소저장량이 10배 이상 높기에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국제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
이에 우리 산림청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4년간 33억원을 투입해 수마트라섬 중동부 잠비주의 이탄지를 복원·보전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임영석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임무관은 이탄지 복원사업 추진 회의를 위해 18∼19일 잠비를 방문했다.
그는 "직접 와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며 "나무 타는 냄새를 넘어 매캐한 냄새를 식당과 호텔 등 실내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카르타의 대기오염이 악명 높음에도 잠비에 오니 자카르타가 그리울 정도"라고 심각성을 전했다.
산불 연기가 브루나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남부까지 번지면서 피해가 막심하다.
말레이시아는 대기오염지수가 치솟아 전날 1천484개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37년째 거주 중인 권병하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명예회장 역시 "매년 산불 연기가 날아왔지만, 올해는 지금까지 경험한 중에 최고로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퀴퀴한 냄새가 나고, 어떤 날은 100m 앞이 안 보일 정도"라며 "가능한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오늘 새벽 한국에서 온 화물기가 연기 때문에 착륙이 지연되는 등 이래저래 피해가 크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산불 진화 인력을 기존 9천명에 5천600명을 추가로 투입하고 인공강우도 실시하고 있지만, 다음 달 장마가 시작돼야 이탄지에 붙은 불이 꺼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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