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고 캠핑] '삿갓 그늘 속으로…' 뼛속까지 시원한 영월 캠핑 로드
(영월=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낙락장송 아래서 한여름 땡볕을 피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무 그늘 옆에 시원한 계곡물이 흐른다면 더할 나위 없다. 여름 캠핑에 최적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 한 곳을 소개한다.
◇ 김삿갓의 그림자
영월의 여름은 서늘하다. 길게 뻗은 내리계곡 옆으로 줄지어 늘어선 캠핑장들은 더위에 지친 서민들이 한여름 무더위를 피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이번 여름에는 김삿갓의 사연이 얽힌 곳, 영월 김삿갓면의 계곡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김삿갓면을 흐르는 내리계곡은 영월 남단 구룡산(1,346m)과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한 물이 합류해 만들어진 계곡이다.
구룡산과 접한 상동읍 일대는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다. 십승지란 조선시대 난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는 10여 곳의 장소를 말한다.
상동읍 덕구리의 삼동산은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흐른 물은 영월군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길게 형성된 김삿갓면 가운데를 관통한다. 김삿갓면은 이 지역이 김삿갓의 삶과 밀착된 곳이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김삿갓의 집안은 1811년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관직에 있던 조부 김익순이 투항하는 바람에 풍비박산 났다.
김삿갓은 어머니 함평 이씨와 함께 영월로 숨어들어와 살았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성장한 김삿갓은,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 나가 김익순의 죄를 신랄하게 비판한 글로 장원을 했다. 기쁜 마음으로 귀가해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한다.
어머니는 그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란 말을 전해준다.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수년간 인근에 은둔하다 결국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평생을 가진 자와 권력자들을 풍자하는 시를 쓰며 다니던 그는 전남 화순에서 객사했고, 유해는 이곳 영월 땅으로 옮겨져 묻혔다.
200년이 지난 지금은 오지였던 이곳에 길이 뚫리고 넓혀지면서 그 가치가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캠핑 붐과 함께 청정한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내리계곡 솔밭 캠핑장
많은 내리계곡 캠핑장 가운데 솔밭 캠핑장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 계곡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김삿갓면 남쪽에 자리 잡은 구룡산과 목우산 사이로 난 길이 내리계곡로인데, 이 길 중 가장 높은 곳이 해발 750m가량 된다. 이곳에서 꼬부랑길을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장소가 바로 이 캠핑장이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캠핑장을 운영해온 업주는 원래 이곳이 버려진 계곡 옆의 솔밭이었다고 말한다.
한 명 두 명 자리를 잡고 캠핑을 하기 시작해서 야영장을 개설했는데, 지금은 100동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캠핑장이 됐다.
때마침 평일이라, 드넓은 솔밭 가운데 가장 멋진 장소를 골라 텐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바닥은 크기가 균일한 파쇄석으로, 배수가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다. 텐트는 가벼운 2인용 백패킹용 텐트를 설치했다.
여행하다가 멋진 풍광을 발견하면 곧바로 텐트를 칠 수 있기 때문에 요즘은 항상 차에 백패킹용 텐트를 싣고 다닌다.
또 시골을 다니다 보면, 제대로 된 숙소를 고르기 힘들 때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도 차에 준비된 텐트와 침낭은 유용하게 쓰인다.
캠핑장은 온수로 샤워와 설거지가 가능하고 야외 개수대와 물놀이 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TV 예능 프로그램도 촬영했다고 자랑한다.
가장 좋은 자리는 물가와 접하고 있는 곳이다. 수심은 어른 기준 무릎부터 가슴높이까지 다양하지만, 대체로 가족 단위 물놀이에는 적당한 수준이다. 전망 욕심에 구획에서 벗어나, 물가에 바짝 붙여 텐트를 설치했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지 물 흐르는 소리에 청량감을 느끼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가끔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처럼 운 좋게 평일 캠핑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지만, 다음날 캠핑장은 주말을 맞아 들어온 가족들로 꽉꽉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좋을 듯 했다.
◇ 줄지어 늘어선 캠핑장들
내리계곡을 내려가면서 수없이 많은 캠핑장을 만날 수 있었다. 솔밭 캠핑장 바로 맞은편에는 '휴가를 부탁해' 캠핑장이 있고 또 내려가면 '느티나무 쉼터' 캠핑장이 있다.
다구(茶具) 전문 박물관인 호안다구 박물관을 지나면 또 다른 '느티나무 쉼터' 캠핑장을 만날 수 있다.
이 캠핑장도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내리계곡 사이에 2차선 도로가 있지만, 다리 밑으로 난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면 천연 수영장이 넓게 형성돼 있다.
주말인 다음 날 오후, 느티나무 쉼터 캠핑장에 있는 수령 250년의 높다란 느티나무 앞에 식료품을 실은 트럭이 멈춰 섰다.
장기간 캠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부식 차가 반갑다. 식료품을 보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캠핑하러 온 사람들 덕분에 지역에 돈이 도는 것이다.
구획이 잘 짜인 캠핑장 안으로 들어서니 가족 단위 캠핑객부터 잠시 물놀이를 하러 온 젊은 여성들까지 가세해 지금이 바로 캠핑의 계절임을 실감케 했다. 수많은 가족이 갖가지 장비를 설치한 모습이 마치 캠핑 장비 박람회 같다.
제각각 물놀이에 빠져 있거나, 고기를 구워 먹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돔 텐트를 설치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타프 밑에 타프 스크린을 치거나, 이 두 가지 조합이 합쳐진 타프쉘 형태의 텐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타프는 대략 가로 5.5m에 세로 4.4m가량으로, 승합차까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다.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까지 모두 캠핑장에 들고나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랴.
전기 사용이 자유로운 오토캠핑장이므로, 선풍기를 가져온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가정에서 쓰는 제빙기가 등장한 것도 벌써 수년 전의 일이다.
또 다른 변화는 카라반을 활용한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화물 트레일러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주변에 캠핑장이 줄잡아 10여곳은 돼 보인다.
캠핑장이 이곳에만 있는 건 아니다. 내리계곡에서 김삿갓면으로 향하다 왼편 와석리 쪽 28번 도로로 접어들면 김삿갓 계곡이다.
김삿갓 묘가 있는 곳이다. 내리계곡보다는 캠핑장이 많지 않다. 이곳에는 나조스트 캠핑장 등 모두 4곳이 영업하고 있다.
주변에는 다구 박물관, 소리음향 박물관 등 둘러볼 만한 박물관이 산재해 있다. 꼭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박물관들은 반드시 전화를 걸어 개관 여부를 묻는 것이 좋다.
여름 성수기 캠핑비는 5만원 선이다. 대부분 매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가스나 물 등 간단한 생필품은 구할 수 있다. 이 지역에 반려견을 수용하는 캠핑장은 아직 없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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