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여전한 19세기 노라의 싸움…연극 '인형의 집 파트2'

입력 2019-04-11 17:44
수정 2019-04-11 19:52
21세기에도 여전한 19세기 노라의 싸움…연극 '인형의 집 파트2'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의자를 빼고는 이렇다 할 소품도 없는 넓은 무대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두 배우가 내뿜는 카리스마다.

'인형의 집'을 떠난 노라가 성공한 작가가 되어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남편 토르발트, 유모 앤 마리, 그리고 훌쩍 커버린 딸 에미를 만난다.

15년 전과 전혀 변하지 않은 공고한 규범 안에 갇힌 이들은 그동안 생각한 모든 것을 쏟아내며 노라와 언쟁을 벌인다.

인간의 독립성, 자유와 규범, 욕망과 책임 등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펼친 노라는 더 거대한 싸움을 하기 위해 다시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나간다.

10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인형의 집 파트2'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떠난 노라가 15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틀간 일을 그렸다.

미국 스타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2017년 작품으로 토니 어워드 작품상, 연출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1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토르발트 역을 맡은 손종학과 박호산, 노라 역을 맡은 서이숙과 우미화는 4인 4색 개성을 뽐내며 각자 색다른 '인형의 집 파트2'를 완성했다.

손종학이 전형적인 권위적인 토르발트를 그렸다면 박호산은 좀 더 친근한 모습의 토르발트로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서이숙은 당당한 여전사 같은 노라를, 우미화는 현실적인 고뇌로 찬 노라를 완성했다.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 '인형의 집'으로부터 15년이 지났다는 설정이지만, 이번 연극은 마치 21세기를 사는 우리 사회 부부와 가족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오랜 기간을 함께했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평행선만 달리는 부부.

남편의 배려가 아내에게 억압으로 다가가고, 아내의 몸부림이 남편에게는 무책임으로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과연 이들은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부부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이번 연극은 단순히 남녀 이야기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전날 첫 공연을 객석에서 지켜봤다는 박호산은 "가족 구성원이 모두 나오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다루는 예술 작품"이라며 "자신을 무대 위 각 인물에게 투영할 수 있어 관객 몰입도도 굉장히 높았다"고 평가했다.



딸인 에미가 전면에 등장해 노라와 말다툼을 주고받는 것 또한 전작과 구분되는 흥미로운 포인트다.

엄마 없이 15년 동안 홀로 커야 했던 에미의 심정을 들으며 노라는 "내가 널 위해 만들려는 세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서이숙은 "한국은 여자가 아이를 두고 떠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이 때문에 이번 작품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많이 고민했는데 관객분들이 (노라의 입장을) 이해해주시는 듯해 다행이다"고 말했다.

진지한 주제지만 절대 무겁지만은 않다.

곳곳에 숨은 코믹스러운 포인트들은 극 전체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특히 이혼 서류를 작성하러 간 토르발트가 공무원과 다투다 다치는 장면을 묘사한 신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 자신이 현실의 '노라'라는 평가를 받는 김민정 연출은 "인간의 독립성은 장소나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이 끝까지 고민해야 하는 화두"라며 "그런 점에서 이번 연극이 제시하는 질문들은 세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세기 말을 다룬 연극이지만 그 시대에 한정하지 않고 현대적인 것과 과거를 혼재하려 했다"며 "이번 연극이 현재 살아있는 4명 인물의 이야기로 보였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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