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메르켈' 놓고 좌우 선명성 경쟁 가속…커지는 중도 위기

입력 2018-11-05 22:40
'포스트 메르켈' 놓고 좌우 선명성 경쟁 가속…커지는 중도 위기

메르츠와 옌스 등 기민당 주요 후보 '우파 노선 강화' 목소리

사민당 내부선 진보성향 강화 요구 커져…대연정 탈퇴 주장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번 임기를 마지막으로 정계 은퇴를 예고한 뒤 독일 정치가 좌우로 갈라지는 현상에 속도가 붙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퇴진 예고는 사실상 중도정치의 퇴조 속에서 이뤄졌다. 난민문제와 경제적 격차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서 메르켈 총리가 표방해온 다자주의적 협력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중도정치 자체에 대한 염증보다는 이를 추진해온 정치세력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키워왔다는 불만이 커진 것이다.

정치권의 이념 및 노선의 양극화 현상은 '포스트 메르켈'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도정당이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꾀하려는 몸부림 속에서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변화의 움직임은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과 대연정의 소수파인 사회민주당에서 뚜렷하다. 두 당은 최근 잇따른 지방선거에서 민심이반을 확인했다. 지방선거의 부진은 메르켈 총리의 차기 총리직 및 당 대표직 불출마 선언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중도우파인 기민당 내부에선 차기 당 대표 선거를 둘러싸고 내부 노선 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기민당 원내대표와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은 우파적 가치를 강조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기민당이 본연의 정신을 분명히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의 재임 기간 사민당과의 연정 등을 통해 탈원전과 동성결혼 등 좌파적 가치를 수용하는 등 '좌클릭'한 데 대해 지적한 셈이다.

슈판 장관도 지난 1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에 기고문을 통해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을 비판하면서 기민당의 핵심적인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인류와 사회에 대해 우리가 가진 가치는 근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르다"면서 사민당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 대해 랄프 브링크하우스 기민당 원내대표는 헤센 주 선거에서 기민당의 많은 표가 극우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인 녹색당으로도 갔다면서 우편향이 정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근 바이에른 주 선거와 헤센 주 선거에서 참패한 사민당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랄프 슈테그너 사민당 부대표는 내부 보고서를 통해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대연정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슈테그너 부대표는 2000년대 초반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 내각이 도입한 '하르츠 IV'를 폐기하고 기본소득 등 새로운 복지 정책을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생활보장 개념의 장기실업급여 체계인 '하르츠 IV'는 당시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 경제를 회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하청 일자리와 비정규직 개념인 '미니잡'을 늘렸다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애초 대연정 참여를 반대했던 사민당의 청년 조직인 '유소스'는 잃어버린 진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면서 당 혁신을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피어 슈타인뷔르크 전 사민당 대표는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사민당도 2016년 미국 대선 경선에 나왔던 버니 샌더스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샌더스가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진보적 정책으로 바람을 일으킨 것처럼, 사회당에서도 강력한 진보 정체성으로 무장하고 대중을 선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이 퇴조하고 진보 및 극우 정당이 탄력을 받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RTL과 nTV 등의 방송사가 지난 3일 여론 조사한 결과,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지지율은 27%에 그쳤다. 특히 사민당은 13%까지 하락했다.

반면 녹색당은 24%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AfD도 13%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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