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교육부가 출처표시 없이 교사 책 전재…위자료 지급"
공익적 목적 등 고려해 위자료 액수는 100만원으로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옛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세계사 지도용 도서를 만들면서 현직 교사가 번역·편집한 책을 출처 표기 없이 전재했다가 위자료를 물게 됐다. 다만 법원은 공익적인 목적으로 전재가 이뤄진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적게 산정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최희준 부장판사)는 역사 교사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A교사에게 1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A교사는 2000년 4월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순서에 따라 시대별 사료들과 사진, 그림을 수록한 책을 펴냈다.
교육부는 2011년 '사료로 보는 세계사'라는 교과서 지도 자료집을 발간하면서 A교사 책 내용 일부분을 그대로 싣거나 일부 수정해 게재했다.
교육부는 자료집의 참고 문헌 목록에 A교사의 책 이름을 넣긴 했지만, 내용을 전재한 부분의 각 페이지에는 제대로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
A교사는 교육부가 출처 표기 없이 책 내용을 무단 전재했다는 이유 등으로 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전국 중·고등학교에 저작권 침해 부분 목록을 첨부한 공문을 보내라고도 요구했다.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2월 교육부는 전국 17개 시도교육감과 한국 교과서연구재단에 A교사의 번역물을 게재한 부분에 출처표시가 누락됐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는 A교사의 책은 직접 집필한 게 아니거나 창작성이 없는 만큼 저작권자로서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도 자료집은 수업 지원용으로 만든 것이므로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A교사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도 다 끝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교사 책을 1차적 저작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A교사가 사료들을 선택하고 배열·구성한 부분엔 그만의 창작성을 갖추고 있어 2차 저작물로서의 '편집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결국 지도 자료집에 출처를 표기하지 않거나 출처를 사실과 달리 표기해 A교사 책 일부를 전재한 것은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학교 교육을 지원할 목적이었다 해도 위법함을 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출처표시 누락과 관련한 교육부의 과실은 자료집을 만든 외부 필진에 대한 관리·감독상의 과실로 제한했다.
또 자료집이 공익적 목적에서 만들어진 점 등을 고려하면 A교사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는 100만원으로 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국 중고교에 공문을 보내라는 A교사의 요구는 "위법한 침해 상태를 바로 잡기 위한 필요한 조치가 이미 취해졌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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