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위협 떨쳐낸 이탈리아 여성의원…25년만에 얼굴 공개
3월 총선서 '反마피아' 당선…남편 살해 마피아 고발 후 잠행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지난 3월 이탈리아 총선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마피아로 악명이 높은 시칠리아 선거구에서 한 여성이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반체제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의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마피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선거 운동 내내 얼굴을 노출하지 않았지만, 반마피아 노선을 취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 유령 정치인이 마침내 자기의 얼굴을 공개했으며, 그가 대중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3년 이후 처음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4일 보도했다.
화제의 여성은 시칠리아 서부 파르타나 태생으로 올해 51살인 피에라 아이엘로.
아이엘로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오랜 시간이 흐르고 오늘에야 두려움 없이 내 얼굴을 드러내고 세상과 마주하게 됐다"며 "이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과 같고, 바로 이 순간 완전히 자유로움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아이엘로는 선거운동 중에도 베일로 얼굴을 가리면서 '얼굴 없는 후보'로 알려졌으며 최근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탈리아 유명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의 남다른 삶은 27년 전 남편이 두 명의 마피아 암살단원 손에 무참히 희생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4살 때 한 시칠리아 마피아 지도자의 아들과 억지 결혼을 한 상태였다.
피자 가게를 운영하던 아이엘로 부부는 1991년 어느 날 밤 마피아 경쟁 세력이 보낸 2명의 암살단원과 마주했다.
아이엘로는 "두 명이 우리 방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은 내 남편에게 총을 쐈다"며 "남편은 내 앞에서 쓰러졌고 피범벅이 됐다"라고 당시 악몽을 털어놓았다.
아이엘로는 2년 후 경찰에 협조하기로 마음먹고, 가해자들을 털어놓아 여러 명의 마피아 단원을 체포하게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피아의 살해 위협 때문에 증인보호 프로그램 대상이 됐다.
이후 일반인들처럼 공공장소에 얼굴을 드러내 수 없었고 사진이 찍히는 것도 피했다. 이름을 바꿨고 시칠리아도 떠났다. 이 와중에 2012년에는 자서전을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일상생활로 복귀하겠다는 결심을 내렸고, 결국 총선에도 출마했다.
이제는 의원으로서 더는 얼굴을 감추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카메라 앞에 섰다.
아이엘로는 "나는 목표가 있다. 의정활동을 통해 마피아에 맞서 증언을 한 사람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극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미 마피아의 표적인 그는 얼굴마저 공개된 만큼 위험도 커지고 계속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야 한다.
아이엘로는 앞서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는 "난 단지 내가 본 것을 말할 용기를 가졌을 뿐"이라며 자신이 결코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cool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