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집권 라울이 쿠바에 남긴 족적…변화·개방 물꼬 터

입력 2018-04-19 02:55
12년 집권 라울이 쿠바에 남긴 족적…변화·개방 물꼬 터

반세기만에 미국과 국교정상화…유휴지 임대·자영업 등 민간경제 확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쿠바를 12년간 이끈 라울 카스트로(86)가 국가수반인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59년간 계속된 '카스트로 형제'의 통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쿠바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권력회가 18일(현지시간) 라울 의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미겔 디아스카넬(57)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을 단독 추대하면서 라울의 퇴진이 사실상 확정됐다.

라울 전 의장은 1959년 혁명 정부를 세운 뒤 47년간 집권한 형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가 2006년 건강상 이유로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물러나자 임시로 뒤를 이었다. 2008년 공식적으로 의장직에 올랐지만 사실상 12년간 쿠바의 최고 권력자 역할을 한 셈이다.

라울은 집권 기간 반미 강경 노선 아래 중앙집권식 계획 경제를 고수한 형 피델과 달리 쿠바 사회주의 경제에 변화와 개혁·개방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울은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 취임식 날 국유산업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일부 개혁은 상당 부분 진척됐지만 일부는 아직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그는 국가 소유의 공유 경제 체제 아래 사적 소유를 확대했다. 2010년부터 민간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개혁조치를 시행한 결과, 일반 국민이 가족 운영 식당 등과 같은 소규모 자영업, 주택 임대업, 가두판매 등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자영업 규제 완화로 2010년 5만 명이던 자영업자가 2016년엔 58만 명으로 폭증했다.

2011년에 발표된 개혁 계획은 '사유재산의 축적'을 금지했지만 2016년의 개혁 계획에는 '부의 축적' 금지로 변경됐다는 점은 라울 집권 기간에 민간 경제가 확대됐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라울은 집권 후 농업 생산성 향상에도 역점을 뒀다. 지난 10년간 쿠바 정부는 120만㏊의 정부 소유 유휴지를 15만1천 명의 개인 농부에게 임대해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가축을 기르도록 했다.

자유 시장경제에서나 볼 수 있는 개인 간 거래도 허용했다. 2011년 말 내국인 간의 주택 판매를 인정한 데 이어 3년 뒤에는 자동차 거래 금지도 풀었다.

이민 정책도 완화했다. 2013년 1월부터 정부의 허가 없이도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2014년 승인된 투자 관련 법에 따라 외국 기업들에 세금 감면과 자금 환수 등의 유인책을 제공했다.

가장 큰 변화는 2015년 쿠바와 미국이 50년 넘게 지속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다.

라울은 2015년 파나마에서 열린 7차 미주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6년 3월 아바나를 방문해 역사적인 화해 무드에 방점을 찍었다.

로이터 통신은 "피델은 이런 변화를 '적에게 굴복하는 행위'라고 언급했지만 라울은 쿠바의 미래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조치들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2011년 공산당 총서기직에 오른 라울은 오는 2021년까지 당의 지도자 역할을 계속 맡는다. 이 때문에 권력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군부의 지지를 토대로 막후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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