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장 가정사까지 정치도구로…트럼프에 비난 봇물(종합2보)

입력 2017-10-18 16:19
비서실장 가정사까지 정치도구로…트럼프에 비난 봇물(종합2보)

"오바마, 전사자 유족에게 전화도 안한다"며 켈리 아들 얘기 꺼내

"트럼프도 전화 안했다" 반박도…전사자 예우 논란 촉발

(워싱턴·서울=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순직 군인들의 유족을 정치도구로 삼아 버락 오바마 등 전임 대통령들을 공격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특히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의 가정사까지 멋대로 공론화해 '오바마 헐뜯기'에 활용, 도를 넘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순직 군인 가족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며 "나는 (복무 중) 숨진 사람들의 모든 가족에 전화했다고 생각한다"고 자랑했으나,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AP 통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순직한 20여 명의 군인 중 최소 2명의 유족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나 편지를 받지 못했다.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자살공격으로 숨진 미 육군 상병 크리스토퍼 마이클 해리스의 부인 브리트니 해리스는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주선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통화는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신 17주차인 그는 대통령의 편지 또한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 시리아에서 군용 차량 사고로 숨진 육군 상병 에티엔 머피의 부모와 부인 역시 아무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나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AP에 전했다.

애초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정치 쟁점화한 것 자체가 2주 전 니제르에서 전사한 특전부대원 4명에 관해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취재진의 지적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점에서 비난이 가열되는 분위기이다.

이라크전에서 헬기 탑승 중 공격을 받아 두 다리를 잃은 태미 덕워스(민주·일리노이) 상원의원은 "최고사령관(트럼프)이 어떤 역겨운 게임을 하든지 간에 그가 전사자 가족을 노리개로 사용하는 일을 멈추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특히 최측근인 켈리 비서실장의 죽은 아들까지 정치도구로 활용하는 데 현지 언론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켈리 장군에게 물어보라. 오바마로부터 그가 전화를 받았나? 오바마의 정책이 뭔지 모르겠다"며 켈리 비서실장이 아들 전사 당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위로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10년 해병대에서 복무하던 차남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잃은 켈리 비서실장이 지난 7년 간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애써 '함구'하며 정치와 얽히지 않도록 노력해왔으나, 그의 '보스'인 트럼프 대통령이 비서실장의 아들을 정치적 영역으로 밀어넣었다고 지적했다.

켈리 비서실장의 두 아들은 부친을 따라 나란히 해병대에 입대해 각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총 11회의 전투에 참전했다. 차남 로버트가 2010년 11월 아프간에서 순찰 중 지뢰를 밟아 전사하면서 켈리 비서실장은 이라크 또는 아프간에서 자식을 잃은 가장 높은 계급의 군인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켈리 비서실장의 가정사를 오바마 전 대통령 공격 소재로 써먹으면서 미리 참모진과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명의 백악관 관료는 WP에 켈리 비서실장을 명시한 이번 라디오 인터뷰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백악관 입성 이래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던 켈리 비서실장이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그리스 총리의 공동 기자회견 때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도 아들 사망을 정쟁에 활용한 데 대한 불만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일각에서 나온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리언 파네타는 "트럼프가 애국자인 켈리와 아들을 자신의 변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대통령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면서 "이 대통령에게 성역은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차남 사망 당시 이라크 서부 다국적군 사령관으로 복무하던 켈리 비서실장에게 따로 위로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CNN과 폭스뉴스 등 복수의 미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나 백악관 방문자 기록을 확인한 결과 켈리 비서실장 부부는 차남 사망 6개월 뒤인 2011년 5월 오바마 대통령 주최로 열린 백악관 조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AP와 WP 등이 전했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켈리 비서실장 부부는 미셸 오바마 영부인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전사자 유족 예우 논란에 오바마 대통령뿐만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반론이 잇따르고 있다.

마틴 뎀프시 전 합참의장은 트위터에서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 그리고 그들의 영부인은 군인과 전사자, 유족들을 진심으로 돌보고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 정치가 아니라 신성한 믿음이었다"고 일침을 놨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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