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대기업의 파렴치한 '기술 약탈' 이번엔 근절될까

입력 2017-09-08 18:12
[연합시론] 대기업의 파렴치한 '기술 약탈' 이번엔 근절될까

(서울=연합뉴스) 대기업이 중소협력업체나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빼돌려 유용하는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빼 들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 등에서 받은 기술자료를 유용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자료 유출 사실만으로 처벌받고, 원가명세 등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되다. 공정위는 올해 연말께 기술유용 사건 전담조직을 만들어 내년부터 직권조사에 나서고 기술유용 여부를 면밀히 가려내기 위한 분야별 기술심사자문위원회도 설치키로 했다. 기술을 빼앗아 유용한 대기업의 부당이득에 대해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금도 강화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공정위는 8일 당정협의에서 이런 내용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기술유용 근절대책'을 추진키로 했다. 당정은 대책 내용을 반영해 하도급법을 고치기로 했다.

대기업은 협력업체와 부품 구매계약을 맺거나 하청업체와 하도급계약을 맺을 때 필요한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하도급법 등 관련 법상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에는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치고 그 내용을 기재한 서면을 거래업체에 주게 돼 있다. 또한 기술자료나 경영정보 등 영업상 주요 정보가 포함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비밀유지 계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해야 한다. 이처럼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가 공들여 개발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으나 대기업의 기술 약탈·유용이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기업 기술 약탈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액이 최근 3년간 연평균 1천억 원이 웃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정부의 중소기업 기술보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술 약탈이 근절되지 않은 것은 위법행위 적발이 신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기술을 탈취당하더라도 대기업의 보복성 거래단절이 무서워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함부로 신고할 수 없는 구조다. 정부가 하도급법으로 기술유용 행위를 금지한 2010년 이후 공정위가 위법 사례를 적발해 제재한 경우가 5건에 그친다. 기술 약탈 피해 신고가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공정위가 변리사와 기술직 등 전문인력으로 기술유용 사건 전담조직을 만들어 직권조사에 나선 이유다. 내년에는 자동차·기계업종을 집중 감시업종을 정해 직권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한다. 공정위는 기술유용 위반 기업에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당이득의 '최대 3배'에서, '무조건 3배'로 강화키로 했다.

대기업의 기술 약탈은 중소기업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시간과 돈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이 빼앗아가거나 납품단가에 정당한 대가를 반영해주지 않는다면 애써 기술을 개발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피해업체가 직접 신고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이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강화한 것은 대기업의 기술 약탈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보려는 공정위의 의지가 반영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전담조직을 만들어 직권조사한다 하더라도 수많은 현장을 모두 조사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제보자의 익명성 보장과 충분한 사전내사를 거쳐 직권조사가 실질적 효과를 거두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대책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대·중소기업 관계도 수직적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합리적 계약에 기반을 둔 수평적 상생 관계로 재정립돼야 한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바로 자신들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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