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넌 경질 막전막후…"'명예퇴진' 날짜까지 정했었다"
존 켈리와 '8월 중순 퇴각'으로 딜했다 유혈사태 후 연기 타진
대북 돌발 발언으로 시간벌기 시도 무위에…권력다툼 패자로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 지난 18일(현지시간) 전격 경질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스티븐 배넌이 당초 7월 말 해임 통보를 받았으나, '명예로운 퇴각'의 모양새를 연출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존 케리 비서실장과의 '물밑 담판'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축복 속에서 8월 중순에 퇴장하는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려놨었지만, 샬러츠빌 유혈사태로 이러한 계획은 물거품이 돼버렸다는 후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 수석전략가였던 배넌의 퇴출을 둘러싼 막전막후를 소개했다.
NYT에 따르면 켈리 비서실장은 지난달 하순 배넌을 만나 "떠나줘야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요란한 충돌 없이 좋은 모양새로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모종의 '윈윈 거래' 제안이었다. 배넌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난주 버지니아주에서 발생한 샬러츠빌 유혈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 문제를 두고 배넌과 켈리 비서실장은 정면 충돌했다.
배넌이 진보성향 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핵 위협과 관련해 "군사적 해법은 없다"는 인터뷰를 한 직후인 지난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더는 배넌을 보호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배넌은 자신의 퇴진 날짜를 대선 캠프 합류 1주년인 8월 14일로 정해두기까지 했지만, 샬러츠빌 유혈사태가 터진 후에는 "지금 나가면 대통령의 '양비론 발언'을 책임지고 물러가는 것 같다"며 일정 재조정을 타진했다는 후문이다.
그 결과,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 즈음으로 이야기가 오갔으나, 그의 돌발적 대북 발언으로 더 이상의 '시간벌기'는 무위로 돌아갔다.
사실 배넌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날 백악관에 입성한 그 순간부터 그곳에서의 시간이 오래 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배넌 스스로 "대선 캠프에 있었을 때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를 동료로 대했지만, 집권 후 나는 갑자기 참모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지인들에게 불평을 털어놓곤 했다고 한다.
지휘계통을 무시했던 배넌의 '비선 스타일'과 맞물려 정책을 둘러싼 백악관 내 긴장감은 고조됐고, 정책적 이견은 정면충돌로 이어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사위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배넌은 대척점에 서 있었다.
샬러츠빌 유혈사태 대응을 놓고 켈리 비서실장과 공동전선을 구축한 이방카 부부와 배넌 간의 대치전선은 극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양비론' 발언을 놓고 켈리 비서실장과 이방카 부부는 발언 정정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배넌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온건한 노선으로 선회해봤자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는 어차피 돌아서지 않는다며 '집토끼 결집' 논리 고수를 주장한 것이다.
백악관내 권력투쟁이 배넌의 승리, 켈리 비서실장의 사임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소문에 한때 미국 주식시장이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이는 결국 낭설로 판명된 셈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을 경질하기 한참 전부터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내분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고 의심하며 인내심을 잃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넌을 '스벵갈리'(다른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최면술사)에 비유한 '악마의 거래'(Devil's Bargain) 라는 책을 접하고도 상당히 언짢아했다는 후문이다.
배넌의 반대파 인사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미친 배넌의 영향력은 부풀려졌을 뿐,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판단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어찌됐든 배넌이 떠난 지금, '수석전략가'는 오롯이 트럼프 대통령 그 자신의 몫이 됐다고 NYT는 평가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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