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랩곡은 홍서범의 '김삿갓'이었다"
한국힙합의 역사 집대성…"여성혐오·소수자 비하 극복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래퍼가 주인공인 엠넷 '쇼미더머니'가 장수 프로그램이 되고 힙합은 대중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한때 음악의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댄스가요의 '양념' 역할에 그쳤던 힙합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대중음악평론가 김봉현은 3일 펴낸 신간 '한국힙합 에볼루션'(월북)에서 힙합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해부한다.
책은 1989년부터 2016년까지 가장 중요한 힙합곡을 선정해 그 의미와 창작 과정, 당시 사회적 맥락까지 꼼꼼하게 짚어낸다.
흥미로군 대목은 한국 최초의 랩곡이 가수 홍서범의 1989년작 '김삿갓'이라는 분석이다.
책은 랩을 '리듬을 근간으로 하는 발화 양식'이라고 규정했다.
홍서범의 '김삿갓'은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이라는 후렴구가 반복, 멜로디 없이 오직 리듬에 의해 가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랩의 기준에 절대적으로 부합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힙합계에서 평가 절하됐던 곡도 재조명한다.
예컨대 H.O.T.의 1996년 데뷔곡 '전사의 후예'에 대해 "한국에서 힙합과 아이돌의 결합 모델을 최초로 제시한 노래"라고 높이 평가한다.
다만, 이 곡이 미국의 힙합 그룹 '사이프레스 힐'의 노래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 백 홈'을 차용한 점도 분명하게 지적한다.
저자는 여성혐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비하 등 한국 힙합이 비판받는 지점을 피해가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 지난해 래퍼 넉살이 데뷔앨범 '작은 것들의 신'에서 보여준 시선을 극찬한다. 어떤 래퍼들은 여전히 자기보다 작은 것을 깔아뭉개며 성취감을 느낄 때, 넉살의 노래는 '작은 것들'을 돌본다.
'함부로 동정하지 않아/ 누군가를 감히 용서하지 않아/ 생각보다 굳건히 지켜온 너 자신은 누군가의 pride/ 자리는 작을 수 있지만 널 여기까지 잘 몰고 왔어 눈물을 닦아'
저자는 이처럼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토대로 "힙합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상에는 힙합이라는 예술보다 더 크고 중요한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 그 가치란 차별이나 억압, 혐오가 아니라 평등과 인권, 사랑이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폄하나 혐오로 의심 혹은 단정할 수 있는 힙합의 면모들은 비판받고 개선돼야 한다. 이것이 힙합을 오랫동안 좋아해 온 동시에 페미니즘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길 원하는 내가 내린 결론이다."
윌북. 180쪽. 삽화 수이코, 1만5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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