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상 15번째 정년퇴임…"마지막 남는 건 딱 자기 그릇"
'33년 외길' 정현태 전 고검 검사…'잔잔한 파장' 이임 동영상 수천명 접속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저를 미화하지 마세요. 후배들이 '쇼'를 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지난 6월 9일 정년 퇴임한 정현태(63·사법연수원 10기) 대전고검 검사는 21일 통화에서 손사래를 치듯 말했다.
"일 좀 하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갔네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대로 산 얘기입니다." 그는 자신이 검찰 역사상 15번째 정년퇴임자란 사실도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검찰 사내 방송국이 19일 내부망에 올린 그의 퇴임기념 동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 수 7천200여 건을 기록하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한 댓글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오롯이 당당히 자신을 지키며 봉사하며 살아온 검사님의 발자취에 경의를 표한다. 정치검사가 아니란 걸 증명하고 있어 더 아름답다"고 썼다.
1983년 임용된 정 전 검사는 사실 누구보다도 '잘 나가던' 검사였다. 1996년 대검찰청 공안 3과장, 이듬해 공안 1과장, 1999년 대검 공안기획관을 지내고 2002년 전국 최대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지검 3차장에 올랐다. '검찰의 꽃'인 검사장승진에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곧바로 굴곡을 맞았다. 서울지검 휘하 검사가 피의자를 가혹 행위로 숨지게 한 것이다. 나라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었다. 지휘라인에 있던 그는 이 일에 책임을 지고 광주고검으로 좌천됐다. 이후 15년간 그의 부임지는 서울-대전-대구고검 등 이른바 '한직'이었다.
그의 정년퇴임이 울림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검사들에겐 인사에서 '물을 먹을' 경우 변호사로 개업하는 게 수순이다. 별다른 전관예우 규제가 없던 땐 후배 검사들이 수사하는 사건을 쓸어담아 '돈벼락'을 맞는 경우도 흔했다. 물론 그럴수록 검찰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조직의 병폐는 깊어졌다.
정 전 검사 역시 '따뜻한 미래'가 보장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숱한 권유에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사람이 잘 나가다 실패의 길로 들어설 때 남는 것은 딱 자기 그릇입니다. 막걸리 한 되를 부어봐야 다 넘치고 남는 것은 한 사발뿐 아니겠나…."
검찰 사내 방송국이 제작한 동영상에서 그는 "우리는 국가가 범죄를 수사하도록 검찰권을 위임해준 사람들이다. 나의 검찰, 나의 검사가 아니고, 국민의 검찰, 국민의 검사"라고 강조했다. 검사직을 개인 영달의 도구로 이용하며 결국 전체 조직을 개혁 대상으로 만든 몇몇 이들에게는 따끔하게 들릴 지적이다.
정 전 검사는 지난달 30일 내부망에 올린 퇴임 인사에서 "평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검찰의 엄청난 위기 상황 속이라 더 마음이 허전하고 아프다"고 했다. 그의 인사는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더 사랑받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가슴에 그리며 늘 마음 깊이 축원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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