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없이 영화 못 만든다'…투자자도 관객도 중국이 압도

입력 2017-04-19 15:21
'중국 없이 영화 못 만든다'…투자자도 관객도 중국이 압도

영화관 숫자도 美 추월…中자본, 할리우드의 비결 속속들이 '열공'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미국의 할리우드가 중국 없이는 굴러갈 수 없게 됐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18일 보도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전직 제작 책임자였던 애덤 굿맨은 "10년 전에는 중국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중국 없이 할리우드가 존재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큰 영화 시장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된 영화의 흥행 수입은 66억 달러로 미국의 114억 달러에 한참 뒤져 있지만 수년 뒤에는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것의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이다.

미국의 티켓 판매는 비교적 정체된 상태지만 중국의 흥행 수입은 2011년 이후 3배나 늘어났다. 2010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그 기폭제였다.

당시 중국인 관객들은 티켓을 사기 위해 수시간 동안 줄을 지어 기다려야 했고 암표는 최고 100달러를 호가했다. 아바타의 중국 흥행 수입은 2억400만 달러였다.

2년 뒤에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이 시진핑 당시 중국 부주석과 협상을 벌여 수입 영화 쿼터를 20개에서 34개로 늘린 것도 할리우드에는 호재였다.

외설, 사회관습,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받지 않는 한 할리우드의 거의 모든 대작이 중국에서 상영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매일 25개의 스크린이 생겨날 정도로 영화관이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은 영화관 수 기준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상하이에 사무소를 두고 영화 제작과 펀딩에 나서고 있는 SK글로벌의 존 페노티 대표는 중국에서 영화 관람이 사회, 문화적 관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치 1950년대의 미국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주 중국은 거대 시장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분노의 질주:더 익스트림'의 개봉 첫주말 흥행 수입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9천900만달러였고 중국에서는 그 두 배에 가까운 1억9천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의 국유·민간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수백억 달러를 할리우드에 쏟아부었다. 올해 자금이 필요해진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모기업인 바이어컴을 찾지 않고 중국 투자자들을 물색한 것이 차이나머니의 위상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브래드 그레이 전 CEO는 중국인 투자자 5명을 포함한 모두 9명의 투자자들과 접촉했고 결국 상하이 필름과 화화 미디어로부터 10억 달러의 출자를 받을 수 있었다.

유니버설 픽처스와 라이언스 게이트 엔터테인먼트는 중국 기업들에 지분을 매각했다. 중국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는 신생 영화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그 일부는 워너 브러더스와 월트 디즈니 출신의 임원들을 CEO로 끌어들였다.

중국 기업으로서는 다롄 완다 그룹이 할리우드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완다 그룹을 이끄는 중국 최고의 갑부 왕젠린 회장은 오래전부터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를 소유하는 것을 숙원이라고 밝혀왔다.

완다 그룹은 2012년 미국 제2의 영화관 체인인 AMC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데 이어 중견 영화사인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도 품 안에 넣었다. 하지만 10억 달러를 주기로 계약한 TV제작사 딕 클라크 프로덕션 인수는 최근 무산되고 말았다.

할리우드와 손을 잡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태도는 자못 진지하다. 영화의 수익성보다는 외형에 치중해 할리우드에서 이른바 '멍청한 돈'으로 비웃고 있는 일본, 독일 기업의 투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와 항공기 엔진의 비밀을 풀려는 것처럼 할리우드로부터 플롯과 캐릭터 구성은 물론 사운드트랙과 비주얼 효과 등 온갖 것을 철저히 배우려 하고 있다.

SK글로벌의 페노티 대표는 그들이 돈을 버는 것에서 더 나아가 100년 동안 미국이 다져온 우위를 단숨에 따라잡기 위해 그 비결을 속속들이 알아내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중국 영화시장이 할리우드가 생각한 것처럼 만만한 것은 아니다. 중국 시장이 대단히 유망하긴 하지만 여전히 수익성은 미국시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1달러를 투입해 2달러를 얻을 수 있었지만 중국에서는 29센트를 건질 수 있을 뿐이다. DVD판매와 TV 방영 같은 부수적 수입을 챙길 수 있는 여건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국산 영화를 키우려는 의도에서 미국 영화의 개봉을 흥행에 불리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배정하고 있다. 할리우드가 제작한 영화가 중국의 영화 흥행 수입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계속 40%정도로 묶여 있다.

올해 수입 영화 쿼터에 대한 재협상이 예정돼 있는 것도 할리우드가 우려하는 사안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 자칫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수입 쿼터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어서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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