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담뺑덕’ 어제의 정우성을 던져버리고

입력 2014-10-08 15:52


정우성(42)이 달라졌다. 심지어 파격적이다. 그런데도어색함이나 거부감은 없다. 이는 20년 간 차곡차곡 쌓아올린 현장에서의 관록과 여유 때문일 것이다. ‘마담 뺑덕’에서 한 여인의 인생을 헤집어놓는 치명적인 남자 심학규로 분한 정우성은 자신만이 구현할 수 있는 매력으로 관객들을 맹렬히 빨아들였다.

정우성의 파격변신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만큼, 정우성 또한 ‘마담 뺑덕’에 큰 애착을 보였다. 그렇다면 데뷔 2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순간에, 정우성은 왜 노출을 감행해야 했을까. 최근 인터뷰를 위해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 정우성 “베드신? 옷 안 입었다고 위축되진 않아”

격렬하고 적나라한 정사신에 자신도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면 이는 정우성의 노림수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는 뜻이다. 심학규로 분한 정우성의 입장에서 이 정사신은 결코 아름답게 그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정우성은 “치열하게 부딪히려고 했다. 치열하게 망가지면서도 스스로의 고귀함을 놓치 않으려는 자의 몰락이 더 안쓰럽지 않나”고 말했다.

큰 화두가 됐던 베드신에 대해 정우성은 “스스로의 욕망에 집착하고 쾌감을 집요하게 쫓아갈 때의 몸부림으로 봐주길 바란다. 단순히 섹스를 즐기는 남자가 아니라, 몰락하는 남자의 몸짓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렇기에 적나라해야했다. 이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걸 보여줌으로서 ‘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노출에 대한 우려도 있지 않았을까. 정우성은 “의상을 좀 덜 걸쳤다고 해서 위축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집요하고 치열하게,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야 심학규의 몰락의 몸짓을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



◆ 정우성 “‘마담뺑덕’, 앞으로 연기 인생 20년을 여는 서막”



그의 말처럼 심학규는 욕망으로 흥하고 욕망으로 망한 자이다. 오로지 욕망만을 쫓는 남자의 심리를 일반 관객들이 오롯이 이해하기란 힘들고, 또 이를 연기로서 오롯이 이해시켜야 하는 배우의 입장 또한 만만치 않게 힘들 것이다. 정우성 역시 심학규의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심정적인 동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했다. 심학규의 자기 합리화를 이해하고 그걸 받아들여 연기한거라고 봐 달라”

정우성이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중절수술을 끝내고 여관에 널브러진 덕이(이솜 분)를 놓고 나올 때였다고. 그는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캐릭터가 운반해야 하는 본질적인 감정을 위반하는 거기 때문에 더 과감하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를 이해하고 그려내기까지는 분명 힘든 과정이었으나, 정우성은 꼭 심학규를 연기해야만 했다. 정우성은 “물리적인 나이도 실제의 나와 비슷하고 그때 남자가 가진 남성성의 힘이 가장 세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지금이 심학규를 연기하기 가장 적당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욕구에 대한 열망이나 집착을 힘 있게 펼칠 수 있었고 감정적으로는 스펙터클하면서 폭 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심학규를 연기하면서 나 또한 새로운 감정의 맛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마담 뺑덕’을 선택한 이유를 전하기도.

물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없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정우성은 “나중에 가서는 심학규라는 인물은 참 못된 놈이지만 나중만 짜릿했다는 그 느낌과 애정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짐작했다. 이어 “‘마담 뺑덕’은 앞으로 20년 연기 인생을 여는 서막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 이미지에 갇히지 않으려고 스펙트럼을 넓혀가려고 했고 관객 혹은 팬들과 소통해왔다고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쌓아나가는 과정에서는 일말의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습득이 됐고 앞으로는 잘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 정우성 “잠시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지금은 유연”

최근 정우성은 新다작배우로 우뚝 섰다. ‘감시자들’, ‘신의 한 수’ 그리고 ‘마담 뺑덕’까지 자주 관객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정우성은 “현장이란 내게 즐거운 놀이터였고 새로운 경험이었고 영화를 이해하는 터전이었다. 그런데 30대 중후반부터는 약간의 나르시시즘인지, 어떤 것에 대한 집중이 와해되기 시작하더라. 그 시기에 글로벌 프로젝트 준비로 인해 국내 영화와의 거리감이 생기고 배우라는 본분과 본질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어 정우성은 다작을 시작한 이유로 “텀이 멀어진 만큼 더욱 더 갈증을 느꼈다.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나를 더 가꾸고 각인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정우성은 약간의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고. 정우성은 “3~4년쯤 한국영화 시장이 활발해지고 새로운 배우들이 부각되고 극장에 걸린 영화를 보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인데, 왜 여기서 여유를 부리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정우성은 “내가 빨리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생각이 더욱 유연해졌다. 캐릭터를 고를 때도 새로운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고집을 피웠던 한 맥락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 놔 버리고 현장에서 치열하게 보내고 이겨내려고 했던 것 같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던 때를 떠올렸다. 때문에 정우성은 앞으로의 20년은 관객들과 더욱 소통하는 데에 쓰겠다고 말했다. “세련되게 소통하는 법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담 뺑덕’ 또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텍스트 사이에서 읽혔기 때문에 선택을 한 거라고 봐 달라”

[사진= 민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