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름방학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다운 가족 여행을 준비했다.
바다를 보고 싶다던 아내와 디즈니랜드 가기를 열망하는 아이들의 요구를 절충해, 우리는 캘리포니아 해변을 거쳐 디즈니랜드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빼어난 풍광으로 이름 높은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며 관광을 즐겼다.
특히 여행의 막바지 즈음, 가재와 샐러드를 곁들인 말리부 해변에서의 저녁식사 자리는 행복해며 깔깔대며 웃던 아이들의 모습만으로도 지금까지 충분히 기억할 만하다.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의미를 들려주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대우 그룹에 몸담고 있던 터라 김우중 회장님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의 숨은 뜻을 설명한 기억도 난다.
갓 8살 먹은 아들이 ''뭘 알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인적이 드문 넓고 넓은 해변에 파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멀리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했던 이야기는 아들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날엔 말로만 듣던 디즈니랜드에 갔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나나 아내도 디즈니랜드는 처음이었다.
여행이나 놀이공원에 별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유학 생활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가족 여행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시간이 아쉬웠다.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과 기념 촬영을 하고, 가난했던 월트 디즈니의 성공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줬다.
가난했지만 큰 꿈을 잃지 않고 참고 노력했기에 그가 살던 다락방의 하찮은 쥐가 미키마우스로 재탄생해 디즈니의 원대한 꿈을 이뤄주었다는 동화 같은 성공스토리를 말이다.
가족 여행을 끝으로 나의 유학생활도 끝이 났다.
돌이켜 보면 유학은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젊은 시절의 유학은 이후 내 인생에 풍부한 자양분이 되기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도 남는다.
유학생활 중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만일 다시 유학을 간다면 특히 어떤 점에 신경을 쓸까?'' 더욱 더 유익한 유학생활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적극적일 것 같다. 요즘은 정보ㆍ통신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달하여 이메일은 기본이고 인터넷 폰,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단을 통해 공간을 초월해 소통할 수 있다.
사회 생활 속에서 묻어나는 계산적인 관점이 아닌, 상아탑에서의 순수한 관점에서 신뢰할 만한 친구를 여러 명 사귄다면, 또한 그 친구들이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이라면 마치 전 세계에 나만의 특파원을 두고 있는 셈이 아닐까?
특히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낯선 사람을 만나고 폭넓은 정보를 얻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그런 관계가 더욱 소중하다.
정보 통신이 지배하는 21세기에는 know-who가 know-how의 원천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인적 네트워크는 살아가는 데 중요한 레버리지 역할을 할 것이다.
내가 유학할 때만 해도 절친한 사이도 졸업 후 몇 년 지나면 소원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종사하는 업종이 다르면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많았다.
통신 수단이 지금처럼 다양하고 강력하지 못한 것도 이유였지만, 좀 더 노력을 했다면 보다 오래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번째는 언어다. 유학 전에 보다 철저히 준비를 하고, 외국 친구와 사귀면서 보다 충실한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요즘은 외국어를 어려서부터 잘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만, 언어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유학 전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통역사 수준의 영어를 익히겠다는 식으로 공부한다면 동기부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현지에서 원어민들의 언어를 배우려면 외국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정해진 학교생활 이외에 그들만의 다양한 문화생활을 함께 체험하며 상황에 맞는 언어를 의식적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 언어 준비가 불충분한 상태로 유학 갔기 때문에 이러한 도전이 상대적으로 취약했었다.
마지막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가급적으로 전공 외 인접 또는 새로운 분야를 부전공 또는 체험하기를 권한다.
현대 지식 사회는 학문간의 경계가 모호한, 통섭의 시대다. 지식과 정보가 통합되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고, 그것에 기초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고 있다. 소위 T자 융합형의 시대인 것이다.
유학 당시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연관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창 만개한 산업 보다 관심은 싹트고 있으나 아직 활발하지 않은 산업과 관련된 학문일수록 미래가치는 더 크다. 너무 먼 미래의 일이 아닐까 싶지만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현실이 된다.
이번 회를 끝으로 10회에 걸친 ''와튼 금융 유학기''를 마감하려 한다.
필자의 글이 유학생활을 준비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하고 도움이 됐었다면 개인적으로 영광일 듯하다.
그 동안 읽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말을 드린다.
<글. 정유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