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실력 차이가 나면 몇 수 깔아 놓고 시작하면 되고 태권도도 체급별 경기가 따로 있지만, 주식은 지금 막 시작한 사람이나 10년된 사람이나 100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프로트레이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한 경기장을 쓴다.
물론 각자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팔고 싶은 것 팔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 트레이더들이 초보 투자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 우리의 결단을 흐려놓을 만한 일을 꾸밀 때도 있다.
예를 들어 9ㆍ11테러 이후 시장은 극심한 불안감에 쌓여 누구도 감히 매수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증시가 10월 26일 저점에서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이 때 시장에 다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개인들을 방해하기 위해 외인들은 고의로 시장에 지독한 백워데이션을 만들었다.
당시는 한국 증시에 선물이 거래되기 시작한지 고작 6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개인투자자들의 선물 매매가 조금씩 커지던 때였다.
그 이전까지 선물이란 이론적으로 미래 주가를 반영하는 것으로 배워왔고 지독한 백워데이션은 미래의 주가를 좋지 않게 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일반 개인투자자는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히 잔뼈가 굵었던 사람도 저점에서의 매수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의외로 잦았다.
2003년 4월, 시장은 대세 상승 초입이었다.
당시 그린스펀이 IT 버블을 제거하고자 3년에 걸쳐 전체 연준 자산의 22%를 늘려 놓고 소위 유동성 랠리를 만들기 직전이었다.
프로 트레이더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개인투자자들이 함부로 저점에서 매수를 하지 못하도록 함정을 팠다.
엄청난 프로그램 매수 차익 잔고를 쌓아 둠으로써 청산을 두려워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을 봉쇄했다.
지금도 외인들은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로그램 매수가 들어오면 주로 외인 계좌를 통해 들어오는데 이 잔고는 지속적으로 증가만 할 뿐 베이시스가 위축되어도 잘 출회되지 않는다.
직전주에 외인들 계좌로만 1조 1000억 원규모의 프로그램 매수가 들어왔는데, 이번 수요일인 7월 21일까지 베이시스의 악화로 나온 매물은 고작 30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2003년 4월 이후를 보는 듯 하다.
마치 프로그램 매수차익잔고라 하는 거대한 댐에 엄청난 매물을 담아 놓고 격발장치를 흔들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매수를 봉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투자자들은 연일 펀드 환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루에 6000억 원이 넘게 환매된 적도 있다.
물론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1조가 넘는 외인 프로그램 매수차익 잔고가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네 번째 도전하는 전 고점에서 외인들이 왜 그런 엄청난 매물을 보여주려 할까?
한번쯤 곰곰히 고민해볼 문제이다.
<글. 박문환 동양증권 강남프라임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