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행들의 대기업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 1천500여곳에 대한 기본 신용위험평가를 지난달 말까지 끝내고 세부 평가 대상을 추려냈다.
채권은행들은 이렇게 선정된 업체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6월 말까지 A등급(정상),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 C등급(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D등급(법정관리)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신용위험 평가 대상이 된 대기업 수는 지난해 1천422개에서 올해 1천500개 안팎으로 다소 증가했다.
그러나 영업실적과 현금흐름 등을 고려해 결정된 세부평가 대상업체 수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적은 800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업체들은 작년에 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기 때문에 올해는 세부평가 대상뿐 아니라 구조조정 대상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33개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됐다. 별도로 신용평가가 진행됐던 건설, 조선,해운업종까지 합하면 79개 기업이 C나 D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경기가 호전된 영향으로 올해 C나 D등급을 받는 기업의 수는 60개 선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최근 극심한 불황을 겪는 건설이나 조선업계도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될 업체 수가 작년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건설업종의 경우 중소 건설사들까지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갔기 때문에 추가로 나올 곳이 별로 없다"며 "조선업체도 작년에 부실기업들을 많이 추려냈기 때문에 상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6월 말까지 진행되는 세부평가에서 C등급을 받으면 채권은행과 경영정상화 약정을 맺고 자산 매각이나 인수.합병(M&A), 경비 절감 등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적극적인 자구책을 제시하지 않거나 채권단과 맺은 경영정상화 약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등 구조조정을 회피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 대출 중단이나 만기 도래 여신 회수 등의 제재가 가해진다.
D등급으로 판정되면 법정관리 신청이나 채권단의 여신 회수 등의 절차가 진행된다.
대기업에 대한 세부평가는 주채권은행과 다른 채권금융회사가 동시에 실시하고, 채권단 내 이견이 있으면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조정한다.
채권은행들은 지난달 말 선정한 9개 주채무계열(대기업그룹)에 대한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 여부와 약정 내용을 이번 주에 확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업황 등 비재무적 요소에 대한 평가결과에 따라 일부 그룹은 약정 체결이 유예되거나 체결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지난해 약정을 체결하고 올해 다시 체결 대상으로 선정된 한진과 올해 새롭게 대상이 된 한 대기업그룹의 경우 최근 실적 개선 등을 이유로 체결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약정을 맺는 대기업그룹은 계열사나 보유 자산 매각을 통한 군살빼기와 유상증자 등 자구노력을 추진해야 한다.
채권은행들은 구조조정 실적이 미흡한 대기업그룹에 대해선 여신 회수와 같은 금융 제재와 경영진 퇴진 요구 등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도 추진된다.
채권은행들은 대기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잡히는 대로 중소기업의 옥석 가리기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외부감사를 받는 여신규모 10억원 이상~3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과 외부감사 대상이 아닌 30억원 이상의 중소기업 등 4만여개가 평가 대상에 올라 이 중 512곳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결정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동시에 수행하기에는 부담이 커 상반기에 대기업을 먼저 보고 중소기업을 평가하기로 했다"며 "중소기업 평가 대상에도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