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84일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평화협정(양해각서 체결)이 “대체로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파키스탄과 튀르키예 등 중동 주요국 지도자와 통화한 것을 공개하며 “최종 세부 사항은 논의 중이며 조만간 발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호르무즈해협 개방도 합의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 합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미국 정치매체 액시오스가 입수한 미국 초안과 이란 매체들이 밝힌 이란 요구 사항을 종합하면 양측은 일단 60일 동안 휴전하고 농축 우라늄 반출 등 핵 문제와 관련해 추가 협상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휴전 지역에는 레바논도 포함될 전망이다.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큰 틀에서 개방한다는 데는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이란이 “전쟁 이전 수준의 선박 통행을 허용하기로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측 초안에는 휴전 기간에 통행료 없이 항행을 재개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액시오스는 전했다. 다만 이란은 해협 관리 권한을 계속 갖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은 250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을 풀어주고, 이란에 대한 각종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내용을 합의문에 담을 예정이다.
이 같은 합의가 이뤄지면 미국은 이란 농축 우라늄 반출 등 전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전쟁을 멈추게 된다. 로저 위커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공화당·미시시피)은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이룬 성과까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긴박하게 움직인 이틀 2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미국 오하이오에 머물던 JD 밴스 부통령, 웨스트포인트를 방문 중이던 피터 헤그세스 전쟁부(국방부) 장관이 급히 백악관으로 소집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결혼식 참석을 취소했다. 그는 이날 하루 동안 파키스탄, 튀르키예, 카타르 등 중동 및 관련 지역 지도자 10명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도 “매우 성공적인 통화”를 했다고 적었다.
같은 기간 테헤란도 분주하게 돌아갔다.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국방군 참모총장은 지난 22일부터 이틀간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 등과 잇달아 만났다. 이란에 공격당한 카타르도 지난 주말에는 중재국으로서 이란을 방문해 협정의 세부사항을 조율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협정 체결에 “수 주 아니면 몇 달이 걸릴 수 있다”고 뜸들였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대대적 공습을 거론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그는 액시오스, CBS뉴스 등과의 통화에서 이란 공습과 협상 타결 가능성이 “50 대 50”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들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란 매체도 관련 소식을 긍정적으로 전하기 시작했다.○ 핵 문제 뒤로 미뤘다
양측은 이르면 현지시간 기준 24일 평화협정 타결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정의 골자는 전쟁을 중단하고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는 것과 이란 핵 프로그램 논의를 휴전 기간 이어간다는 것이다.
교전이 4월 8일부터 중단된 가운데 협정을 통해 휴전 기간을 60일 추가할 예정이다. 미국이 추가 공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휴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고 있는 레바논 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을 중단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실질적으로 휴전이 지켜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선제 양보를 주장해온 미국은 ‘60일 휴전 기간에 논의’하는 것으로 한 발짝 물러선 모양새다. 이날 이란 타스님통신과 파르스통신 등은 핵 프로그램 문제에 대해 이란이 수용한 내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해협 개방이 절실한 중동 지역 국가들이 이 문제를 두고 끝없이 평행선을 달려서는 안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당국자들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이날 통화한 모든 지도자가 합의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NYT는 이란이 향후 농축 우라늄을 포기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액시오스도 이란이 ‘구두 약속’을 했다고 전했다.○ 호르무즈해협 개방 수순
해협 개방에 대해 전쟁 이전 수준 통행량을 회복하자는 데 양측은 거의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과 조건에서는 이견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서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거론한 뒤 파르스통신은 즉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파르스통신은 “해협 관리, 경로 결정, 통과 시간, 통과 방식과 허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이란 관리하에 있을 것”이라며 “전쟁 이전의 자유 통행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란 매체들은 통행료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협상 타결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통행세 체제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타스님통신은 60일간 휴전이 시작된 뒤 ‘30일 동안’ 호르무즈해협에 관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이번 협상 결과가 자신들의 승리라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바가이 대변인은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사산 왕조의 샤푸르 1세가 로마 황제를 이긴 승리의 석조 부조 사진을 올리며 “로마인은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란인이 그 망상을 깨뜨렸다”고 적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