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똑같이 일해도 6억 더 받아…삼성 '성과급의 역설'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6-05-24 11:14
수정 2026-05-24 11:59


1인당 최대 6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성과급 잠정 합의안을 두고 삼성전자 노조가 찬반 투표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삼성전자 사태가 '성과 기여도'와 '보상' 사이의 연결 고리가 헐거운 '한국형 성과급'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근로자의 개별 성과와 연동되지 않은 '성과급'의 역설이 그것이다.

24일 HR 및 보상 분야 전문가와 노동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를 둘러싼 성과급 논란의 핵심은 ‘금액’ 보다 ‘배분 구조’라고 지적한다.

"고액 성과급 자체가 논란이 됐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성과와 보상의 연결고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성과급은 본질적으로 '기여'에 대한 보상인데, 그 구조가 설명되지 않으면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 HR 전문가 A씨
성과급 제도의 전제는 기여도에 비례해 보상이 배분된다는 믿음이다. 이 원칙이 흔들릴 때 성과급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분배금’으로 인식되면서 주주 등으로 부터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 노조는 당초 영업이익 15% 연동 성과급을 요구했지만, 최종 협상 과정에서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을 10.5% 수준으로 조정하고 DX부문과 DS 내 사업부 간 차등배분 구조를 일부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겉으로 보면 사업부별 '성과 차이'를 반영한 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업부 단위로는 성과에 따른 차등 배분이 이뤄지더라도, 사업부 내부에서 획일적 분배 구조가 작동할 경우 ‘기여도 기반 보상’이라는 성과급 본래 취지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실제 반도체 산업은 소수의 기술 리더십이 대규모 영업이익과 기업 가치에 직접 연결되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꼽힌다. HBM, 첨단 패키징, 공정 미세화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기술 역량과 핵심 인재의 희소성이 기업 수익성과 직결된다.

"DS부문 메모리 사업부를 보더라도 HBM 설계 부서 핵심 인재가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의 최대 공신이며 대체 불가능한 인재다. 이들의 기여도 측정이나 리텐션(유출 방지) 차원의 보상 논의 없이 다른 직군과 1/N을 한다는 거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50%에 육박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보상 체계에 갑자기 수십 조를 쓴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글로벌 보상분야 전문가 B씨
안타깝게도 한국 기업들은 이와 관련한 논의를 외면해 왔다.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는 호봉제와 직급 중심 임금 체계가 산업 현장의 기본 질서로 자리 잡아왔기 때문이다. 성과급조차 호봉제와 직급이 반영된 임금과 연동돼 비율로 지급되는 구조다. 사실상 성과급이 아니라 초과이익을 분배하는 '이익 공유'제도로 운용해 온 셈이다.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의 성과급 체계도 사업부·조직 성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렇다 보니 직무 가치 평가와 성과 측정 체계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발전했고, 직무급과 성과급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임금 삭감’ ‘차등 보상’ 프레임이 씌워졌다.

"예전엔 공공기관에서는 성과급을 개별 직원의 성과별로 나눠주면 노조가 이를 거둬서 재분배 하기도 했다. 그만큼 초과 이익은 공유한다는 철칙이 지배했다. 젊은 세대들이 입사하면서 예전과 많이 변했다. 하지만 금액이 삼성전자만큼 컸다면 과연 우리도 '공유'를 했을지 의문이다." -공공기관 퇴직 근로자 C씨
노동 규제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주52시간제 규제에도 '근로시간'과 '직급'이 보상 기준으로 고착되면서, 성과의 질적 차이를 반영한 정교한 보상 설계는 뒤로 밀렸다는 것이다.

"한국은 주 52시간이라는 강력한 규제 아래 놓여 있음에도 '근로 시간' '직급' '호봉'이 기여도 책정의 기준이다. 노동량에 변화가 없어도, 경영 판단으로 벌어들인 이익에 따라 성과급이 변하는 구조다." -제조업 노무 담당 임원 D씨
그 결과 한국식 성과급은 '기여 가치에 대한 보상'과 '집단 재분배'라는 경계 사이에서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이번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으로 그간 외면해오던 '구조적 모순'이 천문학적 성과급 앞에서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삼성전자 논쟁은 찬반 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당분간 내부 갈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본다. 동시에 수십년간 요지부동하던 '한국식 성과급 제도'에 균열을 가져올지도 관심사다. 현시점이 임금체계 개편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까지 논의는 기업이 창출한 이익의 '배분'에만 치중돼 있다"라며 "집단적 배분을 공정처럼 여겨온 한국식 보상 체계를 탈피하고 '공정한 성과 평가 기준 성립'에 대한 논의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