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앞두고 손님맞이 분주한 美…돈 문제에 속앓이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6-05-25 05:23
수정 2026-05-25 07:05

미국 주요도시들이 내달부터 시작되는 북중미월드컵 2026 행사를 앞두고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는 내달 14일부터 여섯 경기를 치르는 링컨파이낸셜필드 경기장을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코트디부아르 대 에콰도르 경기가 6월14일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조별 리그 다섯 경기가 진행된다. 이어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일인 7월4일에 16강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미 건국 초기 정착지로서 필라델피아의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만큼 7월4일 경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미국 주요 인사가 방문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 월드컵 계기로 도심 정비
경기장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대규모 인원이 월드컵 기간 응원전 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각 도시의 핵심 과제다. 필라델피아는 도심 내 대규모 공원인 ‘레몬 힐’을 경기 진행과 부대행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팸 라이언 펜실베이니아주 관광부 차관은 “필라델피아에서는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토너먼트 기간인 39일 내내 매일 팬 페스티벌을 개최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뉴저지주가 교통요금을 인하고 보스턴에서 경기장 폭스버러까지 이동하려면 80달러 이상이 드는 반면 필라델피아는 2.9달러밖에 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고 독려하는 것도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조건이다. 특히 필라델피아는 건국의 중심지라는 정체성을 활용한 행사들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레몬 힐에서 만난 한 남성과 여성은 200여년 전 복색을 갖추고 관광객들과 대화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본명을 한사코 밝히지 않았다. 남성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이고 여성은 “미합중국의 국기를 제작한 벳시 로스”라면서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는 전문직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이 부부 관계인지를 묻자 이들은 한사코 부인했다.

삯바느질을 하는 벳시 로스와 국가의 지도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부부관계일 수 없다는 역할극에 충실한 설명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필라델피아 내에서는 이처럼 과거 복색을 갖추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월드컵은 도시 전체 대중교통 시스템 개선 계기도 되고 있다. 필라델피아 교통국(SEPTA)는 시청역 등 주요 환승거점의 신호와 선로 공사를 서두르고, 사이니지와 조명 등을 교체하는 한편 장애인 등을 위한 접근성 강화 작업을 마치고 있다. 필라델피아 홈 경기 후에는 무료로 대중교통을 통해 귀가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SEPTA는 밝혔다.

다른 도시들도 이번 경기개최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자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애틀랜타는 새 전동차 도입, 기존 역사 개선, 새 요금징수 시스템 구축을 포함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자본개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지자체 비용부담은 ‘고민’월드컵과 같은 대형 행사 개최는 각 도시가 환경 개선을 단행하고 관광지로서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대규모 지출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는 부담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미국 내 11개 개최도시의 적자 총합이 최소 2억5000만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작년 말 전망했다.

이번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16곳은 모두 경기장이 이미 있는 곳이 경기 개최지로 선정된 만큼 경기장을 새로 짓는 부담은 없다. 그러나 미식축구 경기장을 FIFA 규격에 맞춰 개선하는 비용 등이 적지 않고, 과거 지자체의 재원이 되었던 영역을 FIFA가 막으면서 실제 수입을 올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필라델피아의 상황은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다. 민간자금 6000만달러, 공공자금 약 8000만달러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의 사정은 훨씬 팍팍하다. 현장에서 만난 보스턴글로브지의 크리스 세레스 기자는 “보스턴이 행사 준비를 엉망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필라델피아는 준비를 잘 하고 있다고 들어서 취재하러 왔다”고 말했다. 7개 경기를 개최하는 보스턴에서는 7월9일 8강 경기가 진행된다. 보스턴글로브는 지난 3월 이 도시 조직위원회의 목표 예산이 1억7000만달러인데 조직위 통장에 200만달러밖에 없다고 폭로했다. 마이크 로인드 조직위원장은 “모금은 도전”이라고 이 신문에 말했다. 이들은 최종 예산이 1억달러에 못 미칠 수 있다고 인정했다. 텍사스 휴스턴 등도 상당 수준의 적자를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지자체의 상황은 FIFA가 입장권, 스폰서십, 중계권, 주차 수익 등으로 약 110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과 대조된다. 지방자치단체는 보안, 교통, 경기장 개조, 팬존 등의 비용을 부담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은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더피치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식음료 수익 일부를 지자체가 가져갔고, 보안 비용도 미국 축구협회에서 부담했다”면서 “지자체가 가져가는 것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기업 후원을 받는 대신 티켓이나 스위트룸을 판매하는 것도 FIFA는 제한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주최측 관계자는 "대형 행사를 유치해서 성공하는 것은향후 국내 프로 스포츠 리그나 각종 스포츠 토너먼트, 나아가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컨벤션 유치 기회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이나 2016년 이곳에서 열렸던 민주당 전당대회(DNC) 같은 행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행사의 성공은 지역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이는 곧 구단주들이 시설에 재투자하고 지역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견인하려는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중미 월드컵은 6월11일부터 7월19일까지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 16개 도시에서 104개의 경기로 진행된다. 총 48개 팀이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 대회다. 3개국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도 월드컵 역사상 처음이다.

필라델피아=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