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 직장인→살인 용의자…속속 '무죄 판결'에 결국

입력 2026-02-20 17:36
수정 2026-02-20 23:58

2004년 발생한 ‘영월 농민회 간사 피살 사건’의 용의자로 뒤늦게 지목된 송모씨(61)는 381일간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2024년 6월 구속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을 거쳐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구속 전까지 연봉 1억원이 넘는 대기업 직장인이었던 그는 직장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고, 퇴직금 산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송씨는 다음달 법원에 억대 보상금을 청구할 예정이다.

이처럼 무죄가 확정된 피고인에게 지급되는 형사보상금이 지난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무죄 판결이 늘어난 동시에 보상액이 큰 과거사 재심 사건이 잇따른 영향이다. 형사보상금 증가가 국고 부담으로 이어지는 데다 억울한 구금에 따른 손해를 온전히 보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리한 수사 및 기소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늘어나는 형사보상금 2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지난해 지급한 형사보상금은 1274억원(3899건)으로, 처음으로 연 1000억원을 넘어섰다. 전년(772억원) 대비 65% 급증한 수치다. 지급 건수로도 11.2% 증가했다. 형사보상금은 무죄 확정 피고인에게 국가가 구금 및 재판에 따른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다. 구금 일수에 따라 지급하는 보상과 변호사비, 교통비 등 재판 과정에서 지출한 비용을 보전해주는 비용보상으로 나뉜다.

지급액 급증은 고액 보상이 이뤄지는 재심 무죄 사건이 증가한 영향이 컸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재심 무죄 피고인에 대한 보상액은 전체 형사보상금의 83.7%에 달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가의 위법 수사와 재판으로 피해를 본 사건을 대상으로 한 과거사 재심이 잇따르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교도소에서 사망한 박석주 씨의 재심이 대표적이다. 무죄 확정판결에 따라 고인의 유족들은 지난해 14억원대 형사보상금 지급 결정을 받았다. 1980년대 ‘제헌의회그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민병두 전 의원 역시 지난해 2억9000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무죄 나도 100% 보상 어려워무죄 판결 자체도 늘고 있다. 지난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총 6415건으로 전년보다 11.9% 증가했다. 선고 인원 대비 무죄 사건을 뜻하는 무죄율은 1.06%로 처음 1%를 돌파했다.

무죄가 확정돼 형사보상금을 받더라도 실제 발생한 손해를 전부 보전받기는 어렵다. 현행법상 변호사비 보상 한도는 심급당 국선변호사 보수의 5배(275만원)로 제한돼 있고, 구금 보상 역시 하루 최저임금의 5배(40만1200원) 범위 내에서 책정된다. 이태훈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고액 연봉자와 사업자는 형사보상금만으론 실질적인 손해 회복이 어렵고 사선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법률비용 역시 100% 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재정 부담 증가와 별개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수사·기소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죄 판결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무리한 수사 및 기소가 많았다는 의미”라며 “국고 낭비와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오로지 객관적인 증거로만 판단하는 수사·기소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